나의 이야기

소년기의 요람 전주천/수필

푸르고운 2014. 7. 13. 14:39

오늘 오후, 조금 이르게 집에 돌아왔다. 날씨가 다소 변덕을 부렸지만, 봄의 유혹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전거에 빵빵하게 공기를 넣고 카메라를 챙겨 궁금했던 전주천으로 달렸다. 한 달 전 즈음에 우연히 천변 주차장에 갔다가 냇물을 들여다보았다. 물은 맑은데, 새끼고기 한 마리도 볼 수 없어서, 다시 한 번 확인하려고 벼르고 있었던 터였다. 싸전다리 밑에 자전거를 누이고 냇물에 가까이 갔다. 보였다. 작은 새끼 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더 밑으로 가 찬찬히 들여다보니 피라미, 붕어, 송사리 새끼가 보인다. ! 다행이다. 지난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일 때문에 전주천에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환경이 된 것이 아닌지 걱정을 했었는데, 그것이 기우(杞憂)였음에 안도(安堵)한 것이다.

 

 

전주천은 내 소년 시절의 모든 것이었다. 세 살 위인 형을 따라다니며 헤엄을 배우느라 배가 부르도록 물을 먹어도 즐거웠고, 장마에 흙탕물이 노도처럼 흐르는데 한벽루 밑에서 뛰어들어 반대편으로 헤엄쳐 건너는 용기를 준 것도 전주천이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만, 완산동 천변에서 고기 잡던 어른의 장대를 잡고 기어 올라가 축하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팬티 고무줄이 헐거워 물속에서 팬티를 잃어버리고, 고추를 달랑거리며 한벽루까지 뛰어갈 때, 아는 여자아이들을 만나 고추를 가리느라 애썼던 일도 아마 전주천은 보고 있었을 것이다.

 

겨울에 냇물이 꽁꽁 얼면 썰매를 만들어 타는 재미에 밥 먹는 시간을 넘겨 밥을 굶기도 여러 번이었다. 9남매 가운데 결혼 전의 6남매와 친척들이 항상 몇 명 집에 와있어, 14~5명의 대가족이었으므로 식사시간이 지나면 다시 밥상을 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추운 아침이 지나고 햇살이 풀리면, 얼음이 먼저 녹은 곳의 얼음장이 얇아져, 썰매가 지나가면 얼음이 살짝 가라앉았다가 다시 올라온다. 썰매를 빠르게 달려 그 위를 지나가는 건 여간 짜릿한 게 아니었다. 그 스릴을 맛보다가 썰매에 앉은 채로 물속에 빠져 얼음에 갇혀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살아 나온 일도 있었다. 물에서 나오면 입은 옷이 곧바로 얼어 뻣뻣해져 걷기조차 힘들다.

 

언제던가 얼음구멍에 빠졌다가 나와서, 새파랗게 언 몸으로 집에 들어가 아버지 몰래 옷을 벗고 아랫목에 누워 몸을 녹였다. 언 몸이 녹이다가 사르르 잠이 들었는데, 아버지가 날 번쩍 안아 올려 욕실로 데리고 들어가신다. 아버지는 뜨거운 목욕 솥 안에 날 안고 들어가더니,

이놈아! 그러다가 얼음 구멍 못 찾으면 죽는 거여! 그리고 몸이나 빠져나오지 썰매까지 챙겨서 나오다가 숨 막히면 어쩌려고 이놈아!”

아부지가 봤어요?”

네 엄마가 또 썰매 타느라 밥도 안 먹는다고 걱정을 해서 나가봤지. 그래도 꾀는 여우 같아서 썰매까지 챙겨서 바로 뒤로 헤엄쳐 나오는 재주는 비상하더라! 너 또 한 번 얼음 녹는데 썰매 타면 매타작할 거여!”

 

아버지가 긴 턱수염으로 내 얼굴을 비비며 꼭 껴안아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그 때 욕실에서의 기억은 거의 60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내게 남아있다. 하마터면 귀여운 막둥이 아들을 얼음 속에서 잃을 수도 있었다는 염려와 조그만 녀석이 용케도 잘 헤쳐 나오는 걸 보시고 기특하고 안도하는 마음이 겹쳐 나를 그렇게 한참 동안 껴안고 계셨을 것이다. 나중에 형에게서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얼음 밑으로 들어가자 아버지가 놀라 뛰어 내려가려는데, 내가 썰매를 챙겨 헤엄쳐 나오자 못 본 척 집으로 돌아가서 목욕물을 준비시켰다고 했다. 무서울 정도로 엄격하셨던 아버지이셨다. 나와 막내인 여동생만 약간의 어리광을 받아주셨고,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가 중간 역할을 해주지 않으면 대화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 시절 가정 욕실은 동그랗고 깊은 큰 쇠 솥이 욕실의 한쪽에 있고, 욕실 바닥에 나무 발판을 깔아 쇠 솥 욕조의 물을 퍼서 씻는 구조였다. 쇠 솥을 가열하는 아궁이는 밖에 있었다. 아궁이에 장작불을 때서, 물을 데워 목욕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수도시설도 없던 시절이라 샘에서 물을 길어 퍼 나르고 데우는 일이 번거로워 자주 목욕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형들을 시켜 목욕물을 데우도록 하여, 당신이 날 데리고 들어가 언 몸을 녹여주신 것이다.

 

가끔 자전거를 타고 싶을 때 나는 전주천 산책로를 따라 다가교 부근까지 간다. 거기서 다시 되돌아 매곡교, 싸전다리를 거쳐 치명자산 앞 도로를 따라 산책로 끝까지 갔다가 되돌아 내려와 집에 돌아온다. 곳곳에 추억이 숨어있는 전주천 산책로가 좋아서 일부러 왕복한다. 내 소년기의 요람인 전주천 산책길을 지나는 동안, 수많은 추억과 그리운 얼굴들, 지독했던 악동 시절에 저질렀던 죄들을 생각한다. 내 부모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저세상으로 떠났다. 물길도, 바람도, 주변 풍경도 변했지만 내 마음의 전주천에는 아직도 발가벗고 자맥질을 하는 아이들의 신명 난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따끈한 목욕물 속에 나를 안고 어쩌면 눈물을 흘리고 계셨을 아버지의 긴 수염이 지금도 내 얼굴과 목에 간지럽고 애틋한 사랑을 그려주고 있다. (1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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