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연분암 국수/수필

푸르고운 2014. 7. 12. 23:51

          
    지난 32, 고등학교 동창모임의 하나인 ‘36,39 노송산악회월례모임에 참가했다. 2002년 아내가 희소병으로 쓰러진 이후 처음으로 고교동창회의 공식모임에 나간 것이다. 10여 명의 친구와 친구 부인 두 분이 모악산 밑 중인리 가림식당에 모였다. 무려 13~4년 만에 만나는 친구도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도 무상한 세월은 어김없이 얕고 깊은 흔적을 새겨 서로의 이름을 확인하고서야 반갑게 손을 잡았다. 그간의 안부를 묻고, 가물가물한 기억의 저편에 숨어있던 아련한 추억들이 쏟아져 나온다. 함부로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화제가 되어도 허물없는 동기 동창들, 얼굴만 마주해도 즐겁고 행복한 친구들이다.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 약속한 친구들이 모두 나왔음을 확인하고 연분암으로 출발했다.

 

  매달 첫 일요일에 계속되어 온 산행인데도, 오랜 친구들이 만나니 70 넘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험한 욕설과 짓궂은 장난이 넘쳐도 마냥 즐겁고 정겹다. 어느새 오십여 년 시간을 거슬러 학창시절로 돌아간 노동(老童)들의 얼굴에 개구쟁이 시절의 모습이 겹쳐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반세기에 몇 해를 더한 옛일을 어제 일인 것처럼 실감 나게 재현하는 친구, 그늘에 아직 남아있던 눈을 집어 친구의 등에 넣어주며 깔깔거리는 개구쟁이 친구, 아직도 학창시절의 모범생 기분으로 무게를 잡으며 점잖 빼는 친구도 있다. ··고등학교 12년 동안을 같은 학교에 다닌 친구도 있고, 중학교나 고등학교 동창인 친구도 있지만, 소싯적의 친구들이니 모두 편하다.

   입구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연분암 입구를 알리는 거대한 표석을 옆에 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친구들이 준비한 음료와 과자, 초콜릿 등을 나누어 먹은 뒤 연분암 길로 접어들었다. 입구의 지형이 가파르므로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놓았다. 계단의 중간 부분에 합판 쪽을 붙이고 안내 글이 적혀있었다.
 “약수터 공사에 쓰일 자재입니다. 가져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는 글과 표시가 있다. 표시한 방향에 시선을 돌리니, 검은 비닐에 뭔가 담긴 여러 뭉치가 쌓여 있었다. 들어 만져보니 잘게 부순 자갈인 듯했다. 마침, 등에 멘 가방이 비어있어 몇 개 가지고 올라갈까 하고 두개를 집어 들었는데, 친구들은 아무도 관심 없이 올라간다. 그때 뒤따라오던 친구가 젊은 애들 많아. 영감들은 그냥 올라가는 거여한다. 나 혼자 들고 올라가면 친구들이 착한 척한다.’고 비아냥거릴 것 같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11시경에 연분암 코스의 자랑인 편백 숲에 도착했다.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어 오른 나무 사이사이로 햇살이 살처럼 쏘아 들고, 다가선 봄의 온기가 숲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이끌어내고 있었다. 거기에 더하여, 금상첨화(錦上添花)라던가? 어디선가 은은한 피리 소리가 편백 숲의 정취를 한결 신비롭게 채색하고 있다.
 ‘오감(五感) 만족!’ “그래! 바로 이 맛이야!”하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오는 봄 산행의 즐거움이 거기에 있었다. 친구들이 숲 가운데에 있는 공연장의 층계에 나란히 앉아 오미자차를 꺼내 마시려는데 피리 소리가 멈춘다. 우리와 동년배 정도로 보이는 피리 연주자에게 친구 한 명이 다시 한 번 불어주기를 청했다. 들려오는 피리 곡조가 귀에 익다. 내 식견이 부족하여 분명하지는 않지만 영산회상곡(靈山會上曲)’이라던가 하는 불교음악 일부로 생각되었다.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설법하던 광경을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현악 영산회상곡은 장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자랑이다. 연주가 끝나고 박수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한 다음 다시 산행을 시작했다.

    거기서부터 연분암까지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여서 나는 친구들을 기다리지 않고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다. 연분암에 도착해서 경내에 올라서는 순간, “아차!”하는 놀라움과 부끄러움, 그리고 내 실수를 절감했다. 경내에 들어서는 입구에는 밑에서 내가 가져오려다 내려놓았던 것과 같은 검은 비닐 주머니들이 쌓여 있었다. 그 옆 탁자에는 썰어놓은 바나나와 떡 조각들이 쟁반에 담겨 있고, 왼편으로 간이 주방이 설치되어 국수사리가 담겨있는 그릇들이 있다. 큰 솥에선 국물이 끓고, 잘게 썬 김치와 양념장 그릇이 그 앞에 놓여 있었다.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들에게 국수를 대접하고, 떡과 바나나 등 간식을 제공하는 그들의 배려에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망연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 비닐 주머니를 가져왔더라면 주고받는 정이 얼마나 떳떳하고 아름다웠을 것인가? 많은 사람이 올라와 먹는 약수터를 수리하는 데 필요한 자재를 빈 몸으로 올라가는 길에 가져다주는 일은 당연한 일인데, 그걸 내려놓고 오다니! 70년을 헛살았다는 자책감이 들어 참담한 심경으로 서 있는데, 뒤따라온 친구가
 “왜 그렇게 서 있어? , 가서 국수 맛 좀 봐야지. 맛이 일품이여.”
하고 잡아끈다. 염치는 없었지만 궁금하던 참이라 못 이기는 척 따라가 그릇 하나를 들고 국물을 받아 썰어놓은 김치와 양념장을 넣어 한 입 먹어보니 맛이 그만이었다.

   국수를 먹으며 앞을 보니 칸막이처럼 세워진 곳에 모악산과 연분암을 사랑하는 분들에게라는 머리글 아래에 국수 보시받습니다.”라고 세워 쓰기로 적혀있었다. 순간, 연분암에 오르기 전 친구들과 사진을 찍을 때 장년층의 남자 둘이 커다란 국수 뭉치를 배낭에 나누어 넣는 모습을 보았던 생각이 났다. 그분들이 힘들여 가져온 국수를 우리가 먹고 있다. 내가 멍하니 글을 보고 있는 걸 본 옆의 친구가
 “우리도 지난번 산행 때 다섯 뭉치 가져왔어. 국수 보시 걱정하지 말어.”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국수 가닥이 조금은 매끄럽게 넘어가는 듯했지만 검정비닐 주머니에 대한 미안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연분암 국수는 10여 년 전 무진 스님이 힘들여 올라오는 등산객들에게 좋은 인연을 맺고, 국숫발처럼 오래 살라는 뜻으로 나누어 주던 사랑의 유물이라고 한다. 2007년 스님이 열반하고, 그 뜻을 이어받은 모악산과 무진스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주 일요일 12시까지 연분암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국수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연분암 입구 왼편에 작은 오석으로 만들어 세워진 추모비가 있다.

앞면에는
국수면발보다 더 긴 인연인 걸
무진 스님! 연불암의 바람으로 머무소서
2008.  3.  10.
모악산과 무진스님을 좋아하는 사람들“ 


 뒷면에는
모악산객들에게 일요일이면 국수 한 그릇을 아낌없이 나눠주었던
연불암 무진스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정겹고 따스한 웃음이 어제인 듯한데
비통할 따름입니다.
스님의 아낌없는 나눔에 대한 작은 보답으로
산객들이 정성을 모아
추모비를 세워 귀감이 되고자 합니다.” 라고 적혀있다.
 
   무진 스님은 갔지만, 그의 나눔과 사랑은 여전히 남아 세상을 맛있게 하고, 배부르게 하고, 포근하게 감싸는 사랑으로 남아있었다. 연분암 국수는 국수를 나누며, 수고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삭막한 이 시대의 한 가닥 희망이었다.
                          (201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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