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칼럼

격랑의 시대에 봄꿈을 꾸다

푸르고운 2018. 12. 14. 19:25


격랑의 시대에 봄꿈을 꾸다.(3.18자)


  봄이 왔다. 변화와 생명, 부활의 계절이 어김없이 다시 찾아왔다. 남도 산동의 산수유 마을이 노란 안개에 덮이고, 광양의 청매가 만발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봄은 올 봄이나 지난봄들이나 같은 계절이지만, 올 봄은 예년과 다르다. 지난 어느 해 봄도 올 봄처럼 변화무쌍하고 격동의 몸짓을 했던 봄은 없었다.

  이 희망 가득한 봄을 데리고 온 건 평창의 겨울 올림픽이었다. 아니, 2016년 겨울, 촛불시민의 힘이었다. 촛불이 박근혜를 끌어내려 심판하고 새 정부를 출범시켜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어놓았기에 남북대화의 조짐이 일었고, 평창올림픽에서 대화의 물꼬가 터질 수 있었다. 지금도 한반도 평화를 반대하며 어떻게든 남북대결구도를 이루면서, 국민의 불안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아보려는 무리들이 악다구니를 계속하는 상황을 보며 나는 촛불시민이 고맙다.

  금세 터질 듯 불안하던 한반도 상황이 어느덧 평화를 향한 걸음으로 바뀌어, 4월 남북회담을 준비하고 5월 북미회담으로 이어지는 이런 꿈같은 예정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물론 비슷한 상황이 과거에도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그 때는 북한이 핵미사일을 갖기 전이어서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가 절실하지 않았었다. 또 미국 내에도 한반도 평화를 원하지 않는 군수재벌들의 방해가 있었기에 북한이 평화협정을 원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동안 보수 정권들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여 적화통일을 하려고 군비를 증강하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해왔지만, 실상 그들의 무기는 한국군의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구형 재래식 무기 뿐이다. 주한 미군까지 있는 상황에서 감히 붙어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에 겁 많은 강아지가 짖어대듯 시끄럽게 했었다. 그 열세를 만회하고 미국과 대화하여 국가로서 인정을 받는 길은 핵개발이 유일한 수단이었다고 본다.

  최근까지 미국은 여러 차례 영변 핵시설 등을 공격하는 구상을 했지만, 막대한 전쟁비용과 한국의 피해와 전쟁복구 등의 손실이 워낙 커서 감행하지 못했다. 최근까지 미국은 소위 ‘코피작전’이라는 북한 지휘부와 핵시설을 파괴하는 구상을 구체화하는 등 무력으로 북한 정권의 종식을 구상했던 모양이다. 외국에서는 곧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으로 한국을 ‘여행 기피지역’으로까지 분류했다는 말도 있었다.

  북한에 대한 세계의 제재가 최고조에 달해 북한 경제가 파탄지경에 이른 가운데, 그래도 북한과의 대화를 끊임없이 말하는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나 신년사에 김정은이 화답하는 건 북한이 쓸 수 있는 유일한 카드였다. 그리고 평창올림픽에 김여정을 보낸 김정은의 진정성과 문 대통령의 진솔한 마음이 결국 판문점 정상회담으로, 북미회담 5월 개최로 이어졌을 것이다.

  혹자는 북한의 변덕스러운 과거 태도를 들어 위장평화니 시간벌기라느니 하지만, 지금 북한은 그런 변덕을 부릴 여유가 없다. 일단 문 대통령 등에 업혀 북미대화를 시작해서 핵시설 폐기와 핵무기 일부 해체까지도 협상 품목에 올려두고 진중하게 대화에 나설 것이다. 결국 핵개발의 성공은 김정은에게 국가로 인정받는 일과 향후 북한경제 개발에 유용한 교환조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제재에서 풀리고 단계적인 핵 폐기 과정에서 실익을 추구할 것이다.

  상당기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북미회담은 중국과 일본, 러시아까지 국익을 저울질하는 개입을 부를 것이고 주변국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어려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우리의 입장에서 앞으로는 내부에서 자한당 등 일부 야당의 터무니없는 반대와 억지 주장이나, 태극기부대의 집회처럼 실익 없는 소요는 중단하고 이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평화보다 더 좋은 안보는 없다. 전쟁의 위험이 없다면 국방비를 줄여 더 많은 복지를 시행할 수 있고, 더 좋은 공교육으로 사교육비도 줄여 인재도 양성할 수 있다. 평화를 반대하고 대결을 원하는 자들의 공허한 외침에 현혹되는 건 잘못된 시대를 살아온 노인들뿐이다. 이제는 모두 제자리에 제 정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 이 나라는 어쩌면 단군 이래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권력과 금력으로 자행된 불법이 심판받고, 블랙리스트 따위로 억압하던 자들이 줄줄이 법망에 걸려들어 나라에 정의가 살아나고 있다. 여성을 억압하던 남성의 잘못이 ‘Me too’를 통해 폭로되고 공감하는 사람이 늘면서 성 평등의 편견도 줄어들 것이다. 근로자들은 삶의 질을 생각하고 국민은 권력이나 부를 좆던 시각을 넓혀 행복의 본질을 알아가는 단계에 있다.

  여기에 전쟁의 위협이 없는 평화가 더해진다면 국민행복지수도 올라갈 수 있고, 지긋지긋한 입시지옥이나 과열된 투기현상도 줄어들 수 있다. 젊은이는 가장 절실한 청년기를 군대에서 썩히지 않아도 되고 최소한의 군대는 직업군인들이 감당하는 그런 시대도 열릴 수 있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계량하던 황금만능의 의식구조가 바뀌어 인간 본연의 문제를 생각하는 가치관의 변동도 올 수 있다.

  우리가 이 시기를 잘 넘겨야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이 이러한 봄꿈을 완성할 틀이 마련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한눈 팔지 않고 이상한 무리들의 ‘헛 나발 피싱’에 걸려들지만 않으면 오늘의 봄꿈이 결코 남가일몽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정신들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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