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칼럼

처서(處暑), 그리고 AI시대

푸르고운 2025. 10. 7. 05:01

지난 토요일(23일)이 처서였다. 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을 맞이하는 절기다. 더위(暑)가 그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처서가 되면 가을이 귀뜨라미 등에 업혀서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했다. 예전의 부인들과 선비들은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그늘에 말리는 음건(陰乾)이나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거기에 더하여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기에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말도 있었다. 이 속담처럼 처서의 서늘함 때문에 파리, 모기의 극성도 사라져가고, 댓돌 아래서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하는 계절이 시작되었다.

이 무렵에는 벼가 쑥쑥 자라고 강한 볕을 받아 이삭이 패고 낱알이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날씨가 좋아야 나락이 굵게 패어 익어 풍년을 기약했다. 농업사회이던 지난 시절에는 이 시기의 날씨가 한 해 농사를 좌우한 셈이다.

이때 내리는 비를 처서비(處暑雨)라고 하여 몹시 경계했다. 이 무렵에 비가 내리면 벼가 제대로 결실하지 못해 수확이 줄었기 때문이다. 전북 부안에도 처서에 비가 내리는 일을 경계하는 뜻으로 “처서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는 말도 전해 온다.

옛날이야기는 접어두고, 절기는 처서인데 낮 기온은 최고 35℃를 기록했다. 낮 최고기온이 33℃를 넘는 기온이 당분간 이어진다는 예보다. 벼가 잘 자라고 결실하는 데는 좋을지 모르지만, 요즘 날씨는 정말 지겹다. 제발 그만하면 좋으련만….

더운 날씨에 허덕이는 가운데서도 시간은 흐르고 시간을 따라 세상은 쉼 없이 변한다. 우리는 남들보다 재빠르게 그 변화에 적응하여 나름으로 디지털 환경도 구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2022년 새롭게 AI(인공지능) 시대가 열리면서 변화가 필요하게 됐다.

AI는 이미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고 생산성을 혁신하는 새 시대를 열었다. AI시대는 이제까지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판단이 필요한 시대다. 그동안에는 분야별로 많은 지식을 지닌 사람들이 권위를 갖고 사안을 주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AI시대에는 머리에 굳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정리해 두지 않아도 된다. AI에게 물으면 1초 이내에 웬만한 지식을 명료하게 정리해 일러준다. 기억하고 비교하여 판단하기까지 모든 과정을 몇 초도 걸리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의 사실을 망라하여 비교하고 판단할 뿐아니라, 몇 달 동안 풀어야 할 수학 문제도 순식간에 정답을 내놓는다. 앞으로는 어떤 바탕 위에서 판단하고 처리하는 일에 굳이 사람이 나설 필요가 없게 됐다. AI는 반복적인 일에 실수하지 않는다.

앞으로 반복적이고 정형화한 업무, 데이터 기반의 분석 및 처리 업무는 AI가 모두 처리하게 될 것이다. 단순 사무직으로 문서를 정리하고 매일 반복적으로 일하는 업무는 이미 AI가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공장에서 사람 대신 AI 로붓이 생산활동에 쓰이고 자동화 시스템이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 조립이나 단순 생산에서 사람이 배제되었다. 무인 택시와 버스가 운행되고 운송 업무도 무인 배달이 늘어가는 추세다.

요즘 많은 부분에서 문의 전화에 사람이 응답하지 않고 AI가 대답하고 절차를 설명한다. 회계와 재무 분석에도 점점 인간이 하는 역할이 줄어들고 번역과 통역도 스마트폰에서 대부분 이루어진다. 외국어를 몰라도 우리말을 하면 즉시 상대방 언어로 전달된다.

단순 업무만 아니라,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지식과 판단이 필요한 직종에서도 AI가 보조하면 훨씬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됐고 앞으로는 AI가 전문 직종도 거의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많은 직종에서 인간이 설 자리가 없어질 판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직업군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사람이 할 일이 줄어들지만, 앞으로는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업무에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게 된다. 의사나 변호사 등은 단순 업무를 AI가 담당하게 하고 남는 시간에 더 집중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시대에 맞는 직종도 등장하여 사람이 AI를 더 잘 활용하고 상호 보완하는 방법도 나올 것이다. 자칫 소홀하기 쉬운 AI 윤리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직업, 데이터 전문가, 개발자, 프롬프트 엔지니어, 사이버 보안 전문가 등 새로운 직업군이 생길 것이라고 한다.

AI 시대의 도래는 단순히 일부 직업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시장 전반의 대대적인 재편을 부를 것이다. 반복적이고 예측가능한 업무는 AI와 자동화에 의해 대체되지만, 인간과의 상호작용, 고차원적인 창의성 등 이 필요한 직업은 각광을 받을 것이다.

결국 AI는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인간의 능력을 보완하고 확장하는 도구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를 위해서는 AI를 활용하는 능력을 키우고, 예술 창작 등 AI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역량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국민 대부분이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각자의 나이와 속한 집단의 범위 안에서 변화를 의식하고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가가 계층별 적응 메뉴얼이라도 연구할 때다.

변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차분하게 연구하고 준비하면 큰 충격 없이 시대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다 이해하지 못해도 변화하는 현상이라도 알 수 있도록 준비하고 안내해야 한다. 나라의 주인이 소외되지 않아야 바르게 발전한다.

출처 : 전주일보(http://www.jj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