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풍요와 감사의 상징인 한가위 보름달 아래 온 가족이 모여 정을 나누는 모습은 모두가 그리는 이상적인 풍경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속담은 넉넉한 수확의 기쁨과 가족 공동체의 충만함이 주는 완벽한 만족감을 내포하고 있다.
본래 한가위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 깊은 명절이다. 농경 사회의 수확기에 맞춰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 풍요를 기원하는 공동체적 제의(祭儀)였다. 유교의 ‘효(孝)’ 사상이 바탕인 차례와 성묘는 조상에 대한 공경을 표현하는 핵심 의례였다. 갓 수확한 햇곡식으로 빚은 송편을 나누어 먹고 강강술래나 씨름 같은 민속놀이를 즐기며 마을 전체가 하나 되는 축제의 장이 열렸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추석은 점점 의미를 잃고 있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핵가족화 속에서 전통적인 명절의 풍경은 닳고 희미해졌다. 과거 대가족이 모여 오손도손 이어지던 명절 준비는 이제 가족 규모를 불문하고 버거운 부담이 되었다. 이에 따라 격식에 맞춰 차리던 차례상은 간소화나 생략하는 가정이 늘어났다. 이는 현대 사회의 필연적인 변화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불어 기독교 인구의 증가로 종교적 신념에 따른 전통 의례의 쇠퇴는 가속화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추석은 많은 이들에게 ‘명절 스트레스’를 부르는 전기가 되었다. 수십만 대의 차량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민족대이동’이 빚는 극심한 교통 체증, 명절 음식 준비와 손님맞이 등 여성에게 집중되는 과도한 가사 노동, 그리고 선물과 용돈 등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명절의 본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벗어나려는 욕구는 ‘추캉스(추석+바캉스)’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개인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기회로 변하고 있다.
전통적 추석이 제공했던 조상과 가족 중심의 명확한 ‘공동의례’의 틀이 약화하면서, 그 자리에 시간적·경제적 공백이 발생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에게 이 공백은 단순한 휴식을 넘어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표현, 즉 ‘해외여행’이라는 현대적 의례로 채워지고 있다. SNS 등을 통해 보이는 해외에서의 추석 풍경은 더 이상 낯선 장면이 아니다. 개인의 성취와 글로벌한 정체성을 과시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집단적 의례가 개인의 선택과 지위를 드러내는 개인화된 의례로 대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모두가 풍요를 이야기하는 추석, 그 이면에는 노동의 대가조차 받지 못해 명절의 기쁨을 박탈당한 이들의 깊은 한숨이 모두의 관심 밖에 자리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2025년 7월까지 집계된 임금 체불 총액은 무려 1조 3,421억 원에 달하며, 이로 인해 고통받는 노동자는 약 17만 3,000명에 이른다. 임금체불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고 한다.
경기도에서 3,540억 원, 서울에서 3,434억 원의 임금이 체불되어, 두 지역의 체불액이 전체의 52.0%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전북 군산에서도 10억 원대의 임금체불이 발생하여 125명의 근로자가 생계를 걱정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인명 비극으로 치닫기도 했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복잡한 하도급 구조가 만연한 건설업과 경기 변동에 민감한 제조업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는 임금체불이 일부 부도덕한 사업주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추석 명절에 드리워진 또 하나의 그늘은 미국발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 무역 정책이다. 정책이라기보다 ‘행패’에 가까운 그의 계산속은 기술 입국의 한국을 몹시 경계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이 고분고분하게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는 사실을 내세워 한국에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내라며 아예 강탈하려는 그의 ‘깡패짓’은 명절 추석을 기분 좋게 지낼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자칫 ‘미국에 기어오를 나라’여서 더 크기 전에 깔아뭉개버리고 싶은 대상으로 보는 듯 하다.
트럼프는 관세만 아니라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 더하여개인 취향으로 북한의 김정은을 좋아한다며 한국을 패싱하고 북한과 흥정할 가능성마저 있다. 특히 이번 관세 문제에서 한국이 호락호락하지 않아 심기가 불편한 가운데 ‘엿 먹어라’하는 식으로 제멋대로 김정은과 어떤 협상 결과를 이끌어 낼 가능성도 경계할 대목이다. 전혀 안정적이지 않고 믿을 수 없는 성격으로 국제사회를 힘으로 주무르는 그의 잔여임기 3년은 하루도 발 뻗고 잘 수 없을 듯하다.
2025년 추석은 특히 대한민국의 양극화가 도드라져 보이는 명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쪽에서는 임금을 받지 못해 인명을 포기하기까지 했는데 다른 쪽에서는 긴 연휴를 이용해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인파가 공항을 메울 것이라고 한다. 최장 열흘인 황금연휴를 맞아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여행지는 43.1%가 일본이고 동남아 비중이 높다고 한다. 유럽을 선택한 이들은 미식을 즐기고 다채로운 ‘체험 소비’를 추구한다는 분석이다.
이제 휘영청 밝은 한가위 보름달이 뜰 것이다. 그러나 내일 먹거리를 걱정하며 달을 보는 사람들과 파리의 호텔 발코니에서 와인 잔을 부딪히며 보는 사람이 같은 나라의 국민임을 생각한다. 또 트럼프의 탐욕스런 얼굴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제각각인 심사들이 조금이라도 가깝게 움직여서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좋은 추석이 되길 빈다.
출처 : 전주일보(http://www.jj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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