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이야기

한 여름 밤에 만난 징검다리

푸르고운 2017. 8. 31. 21:31


  징검다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통로이고, 연결하는 수단이다. 저편에 보이는 계단까지 깡충깡충 다릿돌을 하나씩 밟아 건너가는 일은 태어나서 죽음을 향해 가는 모든 생물의 한 삶이 될 수도 있다. 평평해 보이지만, 자칫하면 미끄러질 수도 있고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질 수도 있다. 추운 겨울에 돌에 얼음이 얼면 대단히 위험한 돌다리가 된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이어주는 돌다리와 번쩍이며 흐르는 물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듯 보이지만, 그 위를 건너가는 일은 삶의 불가결한 여정일 뿐이다.
  나는 저 징검다리의 몇 번 째 돌을 밟고 있을까? 거의 다 건너서 이제 계단을 오르는 절차만 남아 있는 건 아닐까. 나를 남겨두고 먼저 건너 가버리거나, 건너지도 못하고 물에 빠져 한 없이 떠내려갔는지도 모를 안타까운 딸아이와 아내와 부모 형제, 그리운 모든 이들의 걸음이 저 다릿돌들을 밟고 갔을 것이다. 처음에는 넓고 편한 돌이 놓여있는데, 점점 작아지고 비뚤어져 건너기가 어려웠을 듯싶은 징검다리.
  결국은 너도 나도 모두 혼자서 놓인 다릿돌을 하나하나 밟으며 건너야 한다. 수십 대의 고급차를 가졌다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걸어서 건너야 하는 길, 저 끝 계단을 올라갈 땐 빈 몸, 빈손일 수밖에 없는 길이다. 저 건너편으로 가는 길을 우연히 볼 수 있던 건 행운이었다.



  비가 내리더니 밤이 되자 그쳤다. 더위 속에 비가 내린 덕분에 조금은 기온이 내려간 듯하다. 비 그친 삼천에는 어떤 그림들이 나와 있을까, 궁금한 건 들여다보아야 후련해지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전거를 타고 삼천 산책길을 찾았다. 나 같은 사람들이 꽤 되었던지 산책길엔 사람들이 붐볐다. 궁금하기보다는 더위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들이 비 그친 냇가로 모였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이 될 수 있겠다. 나처럼 뭐든 궁금해 하는 철없는 아이들 같은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산책길에는 아직 스며들지 못한 빗물이 군데군데 남아 자전거 바퀴에 감겨 내게 뿌려지기도 했지만, 밤에 타는 자전거의 맛을 깎아내리지는 못했다. 시원하게 짧은 옷차림으로 걷는 여자들, 걸음걸이에서 나이가 보이는 중년들, 불편한 몸을 이끌어 힘겹게 걸음을 걷는 사람들의 몸짓에서는 하나같이 건강하게 이 여름을 넘겨보겠다는 열망이 엿보였다. 걷기만 해도 충분한 운동이 된다는 걸 체험을 통해서 알아낸 듯 사람들의 표정엔 자신이 넘쳤다.
  삼천을 따라 구이면 지역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조금 더 생각하면서 적당한 사진거리를 찾아야 하므로 시간을 죽일 겸 건강을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그러다가 사람이 조금 줄어들었다 싶은 때에 자전거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자전거 위에서 보던 산책길의 주변 풍광이 걸으면서 보는 것과 판이하게 달랐다.
  걸으면서는 자전거를 타고 갈 때 조금은 시원하게 해주던 바람을 느낄 수 없다. 대신, 걷게 되자 밤공기가 천천히 내 몸의 촉각을 열어주어 산책길 바닥에서 빛나는 유도등과 길섶의 개망초와 마주치는 사람들의 체취를 전해주었다. 가로등 빛과 멀고 가까운 여러 빛들이 혼합되어 산책길과 냇물과 사람들의 얼굴에 흔들리고 반사하는 밤길의 정취는 새로웠다.
  한 걸음 두 걸음의 빛이 다르고, 바람이 다르고, 소리가 다르고, 냄새가 다르고, 살갗을 스치는 촉감이 달랐다. 그 감각은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쏟아내는 에너지와 소리, 일으키는 파동이 모두 혼합되어 내게 전해지는 어떤 메시지 같았다. 그 파동은 살아있는 의미와 움직이는 것들의 에너지와 걷는 이들이 산책길에 만들어 낸 색색의 상념들이 서로 어울리고 화학반응을 일으켜 전해오는 것이어서 다양한 맛과 자극으로 다가왔다.
  다가서는 맛과 자극을 형상으로 그려낼 어떤 대상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리번거리며 산책길을 여러 번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우연히 냇물을 건너갈 수 있도록 돌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를 발견했다. 널찍널찍한 큰 돌들이 빗물에 젖은 위에 건너편의 불빛이 살며시 비쳐 보실거리고, 흐르는 냇물이 징검다리 돌 사이를 빠져나가며 작은 소용돌이를 이루는 수면에서 반사하는 빛이 나를 빨아들이듯 잡아끌었다.
  평범한 듯 보이는 징검다리를 보며 오늘 만난 사람들이 기를 쓰고 걷는 이유와 더위를 이기려 애쓰는 이유가 모두 거기에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건너편, 피안에 이르는 길이 거기에 있었고 아등바등 이 어려운 세상을 버텨나가는 까닭이 저 돌을 차분하게 밟아 조금이라도 쉽고 아쉬움 적은 행보를 하고 싶은 열망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냈다. 어두운 돌다리를 건너가는 사람의 마음에 비치는 희미한 건너편의 불빛까지 사진에 담아내겠다는 생각으로 그 자리에 앉았다.
  돌의 질감과 빛을 반사하는 물의 흐름이 전혀 다른 느낌으로 찍힐 수 있다는 믿음과 그 옛날에 밤 사진을 찍었던 기억을 되살려 오늘의 느낌을 담아낼 수 있겠다는 짐작을 했다. 장시간 노출을 주는 밤 사진은 찍는 방법에 따라 여러 가지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더구나 포토샵으로 효과를 살린다면 삼천에 흐르는 그 빛과 파동을 더욱 생생하고 절실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전거를 길섶에 눕히고 내려가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앵글을 구상했다. 삼각대를 낮게 펴 세우고 카메라를 얹었다. 예상대로 구도가 잡혔다. 시간을 각각 달리하여 3장의 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내렸다. 세 번 째 사진을 화면으로 확인하고는 더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흔히 좋은 피사체를 만나면 수십 번씩 셔터를 누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결과를 확인하고서 혹시나 더 좋은 사진이 나올까하는 요행을 바라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다른 조건이 될 때 다시 촬영을 하면 분명히 다른 사진이 나올 수 있지만, 가로등의 제한 된 빛으로 찍는 사진이 여러 장을 찍는다 해서 달라질 이유는 없다. 그 사이에도 모기들이 달려들어 여기저기 가렵기 시작하는데 버틸 자신이 없어서라도 얼른 치우고 도망 와야 했다. 다음에 물이 더 많아졌을 때, 다시 찾아오면 느낌이 다른 사진을 만들 수 있을 듯하다.
  집에 돌아와 포토샵에 사진을 불러내어 보니 세 장 가운데 마지막 한 장에 내 생각이 다 들어가 있었다. 밤에 찍은 사진에는 시간이 담겨 있다. 어두운데서 빛을 모아 바위의 질감을 끌어올리고, 15~20초 동안 물이 흘러간 자취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징검다리를 밟고 건너간 사람들의 발자국 속에 숨어있는 즐거움과 사랑, 그리움이 아련하다. 슬픔과 절망과 아픔이 흐르는 물에 떨어져 멀리멀리 떠내려간 흔적도 거기에 그려졌다.
  어둡고 두려운 느낌을 줄이느라 노출을 더하고 색온도도 높였다. 사진에는 절망과 아쉬움이 가득 담겼지만, 반사하는 불빛과 안정된 구도는 희망도 찾아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절망의 끝에 돋아나는 희망은 보잘 것 없게 느껴질 수 있어도, 희망이라는 단어는 자라나고 번지는 것이어서 비록 겨자씨만큼 작다 해도 온 세상 사람들을 싣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제주의 혼이 된 사진가 김영갑은 “내가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라고 했다. 그는 변화무쌍한 제주의 풍광을 가장 황홀한 순간에 사진에 담아 사진을 보는 이가 그 모든 것을 한 장의 사진에서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죽음이 엄습하는 순간에도 그는 그 소망을 버리지 않고 버텼다.
  날라리 사진쟁이에 불과한 내가 목숨을 건 사진가의 마음을 알 수 없건만, 어두운 밤에 카메라를 들이대며 자연의 일과 사람의 끝을 같은 선 위에 올려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멈춘 듯 흐르고 있는 물과 바람과 그리움의 흔적을 어설프게나마 담아낼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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