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다. 추리 소설 작가 시드니 셀던의 책 제목으로 우리가 쉽게 기억하는 이 말은 그 옛날 솔로몬 왕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로 무상한 것을 말하기도 했다. 우주 빅뱅 이후 끊임없이 새로운 별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은하가 형성되고 태양계에서 지구라는 별이 만들어진 일도 변화 속의 일부분일 뿐이다. 물론 지구에서 우연하게 생물이 탄생하고 진화를 거쳐 ‘사피엔스’가 오늘의 문명을 이룬 일도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났기에 가능했다.
인간은 살면서 서로를 위해 제도를 만들고 국가라는 형태를 이루면서 제각기 다른 형태의 나라와 제도나 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글씨로나 존재하는 약속에 불과하다.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파기될 수 있고, 바뀔 수 있는 것이 법이고 제도이다. 특히 국가 간의 약속이나 조약, 협정 따위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파기 또는 조정될 수 있다. 더구나 첨단 과학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현대에서 세계가 한 울타리인 것을 실감하는 오늘날 묵은 체제나 제도 따위는 언제든 넘어갈 수 있는 경계를 그은 선에 불과하다.
북한의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던진 한 마디가 경직된 한반도 상황에서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평창 동계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피겨 혼성팀의 출전권조차 반납했던 북한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참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날렸다. 북핵으로 한반도에 전운이 감도는 최악의 상황을 고민하던 우리 정부로서는 북한의 대회 참가로 그동안 막혀 있던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기대 속에 다음날 바로 남북대화를 제의했다.
그리고 북한이 이에 응하여 3일 오후3시30분에 판문점 대화채널을 열겠다고 응답했다. 필자는 그 3일 오후3시30분이라는 시간에는 어쩌면 북한이 상당부분 호의를 갖고 있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본다. 2일 이낙연 총리가 금년에는 삼삼한 국정을 펴겠다고 말하면서 3이라는 숫자에 얽힌 좋은 의미를 설명한 직후에 북쪽에서 3자가 연거푸 들어가는 시간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는 짐작을 하는 것이다.
판문점 연락사무소 통신노선이 회복된 뒤로 남북은 9일 고위급회담 개최를 합의하고 우리 측 대표로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천해성 통일부 차관,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안문현 국무총리실 심의관, 김기홍 평창 동계올림픽 패럴림픽대회 기획사무차장으로 대표단을 인선하여 북측에 보냈다. 그리고 7일 오후에 북한측 대표로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대표단 명단을 통보해왔다.
이제 내일 우리 측 ‘평화의 집’에서 회담이 시작될 것이고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문제는 어렵지 않게 매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다음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그들의 자세이다.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지금 그들은 유엔의 제재와 미국의 강경한 국제적 영향에 따라 최악의 상태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동안 절대 지지를 보여주던 중국이 상호방위조약 자체가 무효화했다고 몇 차례나 언급할 만큼 북중(北中) 관계가 파탄이 났고, 중국은 미국의 핵시설 공격 등으로 북한이 전쟁상태에 돌입하면 즉시 미국보다 먼저 북한의 핵무기를 확보하는 훈련을 할 정도로 북한과 관계는 악화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평창올림픽 참가 권유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한편, 우리정부의 남북대화는 이미 중국이 지난 5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의에서 남북대회를 적극 지지한다는 중국정부의 뜻을 전해왔고, 문대통령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로 대화의 필요성과 의미를 설명하여 미국도 100% 찬성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확인했기 때문에 회담에 걸림돌은 없다고 본다. 미국은 남북 간에 적절한 합의와 진전이 이루어지면 대화에 개입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지금 세계의 시선은 한반도에 쏠려 있다. 최근에 전쟁이 일어날 우려로 한반도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각국이 남북대화에 관심을 갖는 일은 당연하다. 그리고 우리가 북한을 제대로 대화의 테이블에 끌어내서 평화를 위한 초석을 놓는 일보다 좋은 일은 없다. 그런데 이 남북대화에도 국내 보수 야당들의 반응은 제각각이고 뭔가 흠집을 뜯어보려는 의도를 지금부터 풍기고 있다.
우리 옛말에 궁구물박(窮寇勿迫)이라는 말이 있다. ‘막다른 처지에 몰린 도적을 쫓지 말라.’는 뜻으로 어려움에 처한 지경에 처한 자를 핍박하면 도리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북한은 세계의 말썽꾼으로 지목되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평창을 빌미로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 그들이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체제가 무너지고 지난날 구호처럼 승공통일을 이루면 좋겠지만, 이미 핵무기라는 고약한 발톱을 지닌 그들을 힘으로 떨쳐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날 안보논리로 우리도 핵무기를 갖고 맞서보자는 주장은 이론에 불과하다. 그럴만한 시간여유도 없다. 문 대통령의 생각처럼 그들을 대화의 장에 불러내서 한 민족의 입장에서 달래고 화해하며 한반도의 영원한 평화를 모색하는 일이 최선이다. 확실한 보장만 있다면 그들의 핵을 봉인하고 민족 공생의 평화협정을 이끌 수도 있을 것이다.
철지난 안보논리와 궁색한 고집으로 끝까지 대결구도를 유지하여 정권을 쥐어보겠다는 철없는 이들에게 변해야 산다는 세상이치가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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