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손님/수필

푸르고운 2014. 7. 15. 09:37

손님은 다른 곳에서 찾아온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가족이 아닌 타인이 내 집에 찾아온 사람을 일컬어 이라 하고, 높여 부르면 손님이 된다. 한자어로는 ()’이라 한다. 우리 민족은 정()에 약하다. 정은 인심(人心)이라는 표현으로 드러나는 것이어서, 인심이 박()하다는 평판이 나면 이웃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식구들이 먹을 양식이 부족해도 내 집에 찾아온 손에게 한 끼 밥을 대접하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찾아온 손을 내 식구보다 위에 두는 의미로 손님이라고 불렀다. 손님이 있으면 식구들이 조심스럽게 행동하느라 말도 크게 하지 못했다. 밥상도 손님상은 식구들의 반찬보다 좋게, 밥도 아버지의 밥 다음에 고슬고슬하고 보리가 적게 푼 밥을 올렸다. 손님은 우리 가족의 평판을 가름하는 평가자이고, 대외 홍보 통로였다. 자녀들에게 조심성을 가르치면서도, 손님이 있을 때에 더욱 몸가짐을 바로 하고 말을 조심하도록 일렀다. 손님은 내 집과 외부의 세계가 소통하는 전달자인 동시에 감시자였다. 손님들의 눈에 잘못된 가풍이나 비정상적인 언사가 노출되면, 그 집안의 평판이 나빠져 자녀의 혼사 길이 막히고 동네에서 손가락질을 받았다.

 

지난날,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소식이나, 손님이 온다는 징조로 알았다. 손님의 의미는 반가워야 옳다. 내 집에 누군가가 찾아온다는 자체가 기쁜 일이지만, 어려운 살림살이에 손님을 모시는 일은 반가울 수만은 없었다. 우리말에서 손님이라는 단어는 반갑고 좋은 의미보다는 귀찮거나 두려운 표현으로 쓰이는 일이 많았다. 흔히 보던 사람이 아닌, 낯선 얼굴, 낯선 분위기의 인물이 손님이다. 지금은 본가(本家)보다 처가를 챙기는 시대여서, 사위가 아들보다 더 가까울 지경이지만, 지난날에는 사위도 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 하여 조심했다. 내 집에 온 손님은 대접을 잘해야 하고, 모셔야 하는 존재였다. 종두가 시행되기 전에 천연두는 걸리면 죽어야 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무서운 천연두를 손님마마라고 불러 역신(疫神)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 했다. 도둑을 부를 때도 밤손님이라고 하여, 도둑이라고 불러 해코지당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였다.

 

오늘은 밤손님에 얽힌 60년 전쯤의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동족상잔의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의 일이다. 당시 우리 집은 지금의 남노송동 전주제일고등학교(당시 전주상고, 전주남중) , 호남제일교회로 올라가는 골목 어귀에 있었다. 당시에는 그 언저리에 공터가 많았다. 그 일대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피난민들과 해방과 전쟁의 틈에 고국으로 돌아온 귀국동포(귀환동포라 부름)들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정부가 그들의 생활을 감당해줄 형편이 아니었으므로, 천막이나 판자를 얼기설기 얽어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집은 당시 아버지가 해방 후 전북도청에서 퇴직하여 프린트(stencil paper로 등사하여 문서나 책을 만듦) 사업을 하고 있었다. 가족 외에도 필경(筆耕) 하는 사람,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어 20명 가까운 사람들이 밤을 새워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날도 자정을 넘어 왁자지껄하게 책을 만드는 종이를 고르고 다듬느라 토닥거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뭔가 우두둑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큰형과 둘째, 셋째 형이 득달같이 뛰어 나갔다. 그 당시 울타리는 굵은 나무기둥을 박고, 가로대를 상··하에 설치한 다음 판자를 촘촘하게 잇대어 밖에서 집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했었다. 어두운 밤이어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서쪽 울타리의 판자 한쪽이 부러져, 이빨 빠진 형상을 한 것이 발견되었을 뿐, 관솔불을 들어 집안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별 이상이 없는 듯했다. 아마도 도둑이 들어오려고 판자 울타리를 잡고 넘으려다, 판자가 부러지는 바람에 달아났을 것이라는 추측까지 나오고 상황을 끝맺으려는 순간,

, , 저것이 무엇이여? , , 폭탄 아녀?” 허공에 손가락질하며 공포에 질린 큰형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울타리 기둥 위에 길쭉하고 둥근 물체가 올려있는 것이 밤하늘에 실루엣으로 보였다. 더구나 그 윗부분은 폭탄의 삼각 꼬리처럼 보여 영락없는 대형 폭탄이다. 전쟁 동안 수없이 보아온 폭탄이었고, 그 당시도 여기저기서 불발탄이 터져 인명손실이 컸던 터라 모두 겁을 먹었다. 이때 평소 겁을 모르는 셋째 형이 관솔불을 장대에 달아 물체를 확인하려 가까이 갔다.

! 이놈아, 터진다, 불 대면 터져, 다 죽일래?” 아버지의 다급한 외침에 셋째 형도 장대를 내렸다. 요즘 같으면 119에 전화 한 통화면 해결될 일이지만, 그날 일도 못 한 채, 날 새기를 기다렸다.

 

어스름한 새벽이 되자, 폭탄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 셋째 형이 사다리를 찾아서 올라가 문제의 물체를 들고 내려왔다. 밤손님이 길쭉한 고추장 단지를 보자기로 싸서 기둥에 올려놓고 담을 넘다가 판자가 부러지는 바람에 달아난 것으로 보였다. 단지 뚜껑 위의 보자기 매듭이 포탄의 꼬리처럼 보여 한바탕 재미있는 희극이 연출되었다.

아침을 먹을 때 어머니가 얼마나 고추장이 먹고 싶었으면 담을 넘어왔겠느냐? 우리가 좀 적게 먹자. 둘째하고 셋째는 아까 고추장 단지 들고 가서 우리 밭 옆에 사는 사람들한테 조금씩이라도 나눠줘라.” 하셨다. 어머니는 이듬해부터 교동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고추장 · 된장을 가능한 한 많이 담가, 필요한 이들에게 몰래 나누어 주셨다.

모두 어려웠던 시절이지만, 아름다운 정이 소리 없이 흐르던 그 때가 그립다.

(201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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