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빗소리를 들으며/수필

푸르고운 2014. 8. 2. 22:04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고귀한 생명이 내려온다. 완산칠봉의 까치들도 내리는 비가 반가운지 , 꺅꺅, 꺽꺽목청껏 비의 찬가를 부르고 있다. 까치 소리가 잦아든다 했더니, 박새, 때까치, 곤줄박이, 그리고 이름 모르는 새들의 노래가 삐삐, 찌찌, 짹짹이어져 소란한 협연이 한창이다. 아마도, 물을 찾아 헤매야 했던 새들이, 내리는 비에 갈증을 풀며 신바람이 나서 부르는 노래일 듯하다.

 

올해 건()장마가 들어 여태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았다. 옛말에 ‘7년 대한(大旱)에 비 안 오는 날 없다.’고 하더니, 비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도 정작 비는 병아리 눈물만큼이나 오다가 말았다. 지금 내리던 비도, 이 글을 시작하고 몇 분 지나자 잦아들고 있다. 비 덕분에 무더위가 수그러들어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것으로 위안으로 삼을 수만은 없을 만큼 물부족이 심각하다. 오늘 새벽에 자전거 운동을 나가 구이 저수지 무넘기까지 갔다가 왔다. 저수지 밑, 관개수가 풍부한 지역이어서 작물들은 이상이 없었지만 삼천에 물이 크게 줄고, 저수지의 수위도 너무 낮았다. 근처 밭에서 농사일을 하는 노인의 밭에 사진을 찍으러 들어갔다. 옥수수가 익었고, 참깨 꽃이 피기 시작했었다.

 

사진을 찍고 노인에게 물었다.

밭이 좀 푸석푸석해 보입니다.”

비가 감질만 내고 안 와서 고추랑 깨랑 모두 그만하고 있어요. 덥기만 하고 소나기도 안 오니, 뭔 날씨가 이러는지…….”

아직 작물이 타들어 가지는 않지만, 비가 와야 대지가 식어 기온도 내려가고 작물도 제대로 자라서 안정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마구잡이 석유자원의 낭비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인간들의 무절제한 욕심과 이기주의가 지구온난화라는 재앙을 몰고 와, 기상이변으로 되갚음을 당하고 있다. 곳곳에서 홍수와 폭설이 거듭되고, 예측 불가능한 이상기후가 빈발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 해마다 이어오던 우리나라의 장마철이 올해 마른장마로 변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으로 보인다.

 

오늘 낮에는 고교동창들과 함께 모악산에 갔다. 해가 나오지 않는 흐린 날씨여서 조금 덜 더웠지만, 습도가 높아 땀이 많이 났다. 왕복 2시간 거리인 천룡사까지 갔다가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계곡을 살펴보니 위쪽에는 물이 보이지 않았고, 거의 다 내려온 사랑바위 다리 근처에서부터 물이 보였다. 물은 있지만, 흐르는 물길이 끊어져 군데군데 웅덩이에 고여 있었다. 조금 더 내려와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물이 자작하게 마른 곳에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허옇게 배를 뒤집고 죽어있다. 물이 흐르지 않아, 작은 웅덩이에 살던 고기가 물이 줄어들면서 죽은 것이다. 나는 평소에 산을 오르내리면서 길옆 웅덩이를 항상 유심히 관찰한다. 찬물에서 작은 물고기가 노는 게 보기 좋아서이다. 그런데 오늘 그만 속상한 꼴을 본 것이다. 오늘 밤 비 소식이 있으니 조금만 버텼더라면 살 수 있었기에 더욱 안쓰러웠다. 거기서 조금 더 내려오니 작은 웅덩이에 2~30마리의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있었다. 그 고기들을 물 많은 곳에 옮겨 줄까 생각하다가, 일기예보를 믿기로 하고 산에서 내려왔다.

 

어린 왕자를 쓴 프랑스의 작가이자 시인이며 비행사인 생텍쥐페리는 그의 책 인간의 대지에서 , 너는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다. 너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 가슴속 깊이 사무치게 한다. 너와 더불어 우리 안에는 우리가 단념했던 모든 권리가 다시 돌아온다. 네 은혜로 우리 안에 말라붙었던 마음의 샘들이 다시 솟아난다.’라고 말했다. 가뭄으로부터, 갈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물이다. 우리가 그 고마움을 잊고 낭비하고 하찮게 생각하는 동안에, 물은 우리의 생명과 함께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물에서 태어나 물을 먹으며 성장하고 살다가, 몸에서 물이 움직이기를 중단하면 죽는다. 인체에서 물이 제대로 움직이면 건강하고, 물이 막히거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면 병으로 나타난다.

비가 내리다, 그치다 하고 있지만, 내일 오전까지 내린다니, 그런대로 해갈(解渴)은 되는가 싶다. 아마도 지금쯤 모악산 계곡의 물고기들은 새 물을 만나 신바람 나게 상류로 헤엄쳐가고 있을 것이다. 물 만난 고기라지 않는가? 그 작은 녀석들의 몸놀림이 눈에 보이듯 선하다.

내일 아침에는 촉촉이 젖은 소나무 숲의 새들이 빗소리와 하모니를 이루는 생명의 찬가를 부르며 나를 깨울 것 같다. 숲 속 아이들의 합창을 잘 들으려면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불편하지만, 보청기를 끼고 잠을 청해봐야겠다.

(201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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