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볕 바라기
잠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암막 커튼 사이로 새어 드는 빛이 어둠을 거의 밀쳐내고 있다. 희미하게 보이는 시계 바늘이 벌써 8시 언저리에 있다. 잠시 누운 채로 정신을 가다듬어 평소처럼 아침 기운에 나를 맞추는 시간을 보내고서 일어나 커튼을 젖혔다. 햇빛이 베란다의 버티컬브라인드에 내려와 밝은 노랑으로 휘황하다. 주섬주섬 알몸을 가리고 베란다 브라인드 커튼을 걷었다. 햇살이 방안 깊숙이 작살처럼 꽂혀 들면서 게으른 내 아침 행동을 힐책하는 듯하다. 요즘 가벼운 비염으로 코가 막혀 잠이 쉬 들지 않고 자주 깨어 깊은 잠을 못자더니 오늘도 8시 남짓까지 늦잠을 잤다. 오늘 아침 햇살은 유난히 더 밝고 상큼한 느낌을 준다. 아마도 폭설과 한파가 계속되어 볕을 제대로 쪼이지 못한 몸이 햇볕을 그리워했던 까닭일 게다.
동동남향의 침실이자 작업실이고 거실인 방에 길게 누운 빛은 잠시 머물다가 앞 동 아파트에 가리어 떠날 것이다. 그리고 해가 가린 아파트 위로 올라오면 조금 더 성숙한 볕으로 다시 찾아와 밤새 움츠렸던 방안 공기를 어루만져주고 11시가 되기 전에 다시 떠나게 된다. 내 방과 아침 햇볕은 매일 이처럼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고 있다. 거의 동향(東向)에 가까운 방의 좌향(坐向) 때문에 겨울에는 볕이 아쉽지만, 봄이 이울어 더위가 슬슬 고개를 들 때부터는 볕이 일찍 지나가는 일이 고맙기 그지없다.
오늘 같은 겨울날의 볕기에는 어린 시절 동무들과 구슬치기하다가 손가락이 얼어 곱아들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녹이며 바람 막힌 돌담 밑에 옹기종기 모여 쬐던 볕처럼 아련한 그리움이 숨어 있다. 길게 드리운 볕이 첫 번째 이별을 준비할 때 쯤, 냄비를 불에 올리고 밥을 데워 아침을 먹었다. 30분 남짓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올 햇볕을 옹골차게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릇을 씻고 설렁설렁 방을 치운 다음, 커피 한 잔을 내려 돌아오니 한결 밝아진 볕이 다시 길게 누워있다. 볕바른 자리에 의자를 끌어와 유리창에 바투 대어놓고 앉았다. 손등과 발등에, 시들고 푸석해진 내 볼에도 아득한 다사로움이 내려앉는다. 햇볕을 여러 날 못 보았던 터라 볕이 그리웠고 그래서인지 피로감도 있어서 이참에 비타민D를 좀 얻어 보겠다는 내 기대가 더해져 볕내는 퍽 감미로웠다. 읽던 ‘도올 김용옥’의 ‘계림수필’을 폈다.
볕 바라기를 하며 펼쳐든 계림수필에는 왕양명(王陽明)이 제자들의 강학(講學)을 보고 나무랐다는 대목이 있었다. “성인(聖人)을 간판으로 내걸어 가르치지 말고 배우는 그들과 같은 지평에서 학문을 가르칠 때 비로소 진정한 학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라는 요지였다. 과연 그러할 듯하다. 위대한 이의 이야기를 거나하게 늘어놓아 가르친들, 그건 성인의 생각이고 일일 뿐이다. 배우는 이의 높이에서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가르치는 것이 바른 교육일 터이다. 그 글에서 요즘 내가 번민하고 있는 수필공부와 상통하는 점이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껏 글감을 보아온 눈이 과연 어디에 높이를 맞추고 있었는지, 왜 아무리 들여다보고 뒤집고 엎어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는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물론 “유레카”를 외칠 정도가 아니었고 아렴풋하게 실마리가 보일 듯한 느낌이 지나갔을 뿐이다.
도올은 닭을 방사하는 집 정원을 ‘계림(鷄林)’이라고 부르며 닭들이 알을 낳고 알에서 병아리로 또 자라고 다시 낳고 하는 이야기를 벼리로 이어 적으며, 그날그날 생각한 일을 길게 또는 짧게 일기로 적었다. 재미도 있고 학문적 깊이도 느껴지는 그야말로 수필(隨筆)이다. 넓고 깊어 분방한 필치에 나의 초라함을 느끼게 했지만, 한편으로 때를 잘못 타고난 그의 가슴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새기느라, 그 또한 많이 아파했을 거라는 짐작도 했다. 주인인 국민이 권력에 뭉개지는 이런 시대에 살면서 늙었다는 구실로 되잖은 수필이나 탐하고 있는 내 노년이 과연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하찮은 노인인 내가 어떤 안간힘을 한들 이 세상의 구정물을 한 방울이라도 걷어내는데 도움이 되겠는가 싶고, 이나마 한줄 글이라도 써서 누군가의 가슴에 한 올 실마리가 되거나 기쁨을 준다면 이 또한 보람이 되리라는 희망으로 마음을 돌렸다. 실로 영악하고 비겁한 생각의 합리화이고 허망한 위로였다.
책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문득 조금 산산하다는 느낌에 정신 줄을 잡고 보니 어느새 볕이 떠나려고 베란다의 끝에 가늘게 남아 흐르고 있다. 잠시인 듯 두어 시간이 내게서 빠져나갔다. 내게 주어진 길지 않은 시간에서 두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가늘게나마 느껴지던 볕의 온기도 사라졌다.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동안에 시간이 흘러가고 볕도 잃었다. 어떤 것을 얻으려면 얻는 만큼 잃는 것이 있어야 균형을 맞출 수 있구나. 기울어진 세상인 듯하지만 원인이 있기에 결과가 있고 공평하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늙바탕에 이르러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산다. “좀 더 일찍 생각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수없이 넘나드는 노년의 나날이 가끔은 기특하고 애틋하다.
오늘 오전에 햇볕과 왕양명과 도올 덕분에 좋은 시간을 보냈다. 도올이 권하던 왕양명의 ‘전습록’이나 구해 읽어보아야겠다. 키가 모자라 과실을 딸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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