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전거를 타고 아내가 있는 추모공원에 갔다 오는데 손이 너무 시렸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아내를 떠나보낸 아픔을 당하여 세월을 잊고 지낸 탓일까? 단장(斷腸)의 시간에서 깨어보니 어느새 겨울이다. 손가락이 드러나는 반 장갑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찬 날씨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자전거를 탔다. 올 봄에 잃어버린 가죽장갑 생각이 간절했다. 재작년에 가죽장갑을 사서 손가락 부분에 아내의 헌 모피 모자 조각을 덧대어 꿰맨 장갑 덕분에 이태동안 내 손이 시리지 않았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잃어버린 장갑이 추워진 날씨와 함께 다시 기억 속에 들어왔다. 아니, 그 장갑보다는 장갑의 손가락에 덧대어 꿰맨 밍크 쪼가리에 대한 추억이 생각났다고 해야 옳다.
날 두고 먼저 이 별에서 떠난 아내는 모자를 좋아했다. 내가 그녀를 만나 처음 사준 선물이 털실로 짠 작은 챙을 단 모자였다. 모자를 처음 써 본다는 그녀에게 핑크 베이지색의 모자는 참 잘 어울렸다. 스물 한 살의 나이에 무엇인들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을 터였지만, 모자를 쓴 그 얼굴은 내가 16년 병상을 지키며 항상 떠올리던 그리운 모습이었다. 그녀가 오래도록 쓰던 모자는 세탁하면서 줄어들어 딸들이 차례차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 되면 물려 썼고, 끝으로 아들까지 물려 졌다. 그녀의 병세가 깊어져 헌 옷가지들을 모두 버렸지만, 그 모자는 내 짐의 중요물품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자는 47년 후에 그녀의 관 속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이 별을 떠났다.
아내는 제 손으로 옷이나 장신구를 사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내게 여윳돈이 생겨 사주는 것을 좋아했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그릇 몇 개와 수저 두 벌로 시작한 살림이어서 푼푼하게 쓸 여유도 없었지만, 아내는 규모 있게 살림을 해서 몸치장하는데 돈을 쓰는 일은 없었다. 반면에 나는 돈 쓰기를 좋아해서 돈이 생기면 이것저것 사들이고 아내의 옷이나 속옷, 모자 등 장신구도 잘 사주었다. 아내는 얼굴이나 체형이 웬만한 옷을 다 소화할 수 있어서 뭐든 입으면 어울렸다. 내 장갑 속에 오려 넣었던 밍크는 90년대 초반에 내가 유럽여행 길에 들렀던 모스코바 공항 면세점에서 산 러시아 식 털모자를 오려낸 것이다. 퍼플 그레이의 밍크털이 아름답던 모자를 쓴 그녀는 40대 중반 답지 않게 곱고 귀티가 넘쳐났었다. 아내는 그 모자를 퍽 좋아했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의 겨울이 포근해서 모자를 쓰면 머리에 땀이 나서 몇 번 쓰지 못하고 아쉬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날씨가 추워져서 장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나고, 그 생각을 따라 먼저 간 아내가 다시 그리워지는 이러한 생각의 순환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나는 그동안 아내를 찾아가고 이런저런 뒷바라지를 하던 지난 16년의 습관처럼 익은 생활패턴이 갑자기 달라져 자꾸만 허둥대고 있다. 전이나 지금이나 나 혼자 살아왔고 집안에 무엇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데, 뭔가를 잊은 듯, 잃은 듯 허전하고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그리고 아무 할 일이 없어진 사람처럼 불안하고 무슨 일이던 조바심이 난다. 다시 생각해보면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아픈 그녀를 돌보아 온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에게 기대고 매달려 살아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가 병을 얻어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그때에 내 삶은 끝났었다. 세상과 단절된 간병인의 삶을 살면서도 그 일을 숙명처럼 여겼다.
그런 나를 두고 어떤 이는 사랑이라고 했고 누구는 집착이라고, 누구는 연민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런 정의가 모두 맞기도 하고 전부 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 말이 맞고 달리 생각하면 저 말이 맞은 듯하지만, 사실은 아무런 이유가 없다. 남편이라면 병든 아내에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고, 나을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을 알았으면 더욱 잘 돌보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해서 이다. 그녀가 나쁜 병에 걸린 것을 안 순간부터 그녀의 허물은 다 씻겨 흘러가버렸고, 예쁘고 애틋한 기억만 남았다. 병이 깊어갈수록 가엾고 지난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이 더 짙어져 나를 붙들어 매었다. 그녀는 병상에서 내게 자신의 허물을 말하고 나도 내 잘못을 털어내며 화해와 용서를 구했다. 혹시라도 말하지 못한 일이 있을지 생각하며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열고 닦아주었다. 그녀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는 글자판을 만들어 짚어가며 눈을 깜박여 대답하면서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 했다. 하찮은 작은 일까지도 생각해내서 모두 말을 하고 서로 마음을 보듬어주는 데는 몇 해가 걸렸다.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눈을 깜박여서 대화하는 일은 웬만한 끈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떠나기 전날 우리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서 마지막 하고 싶은 이야기와 이별 행사를 치렀다. 며칠 전부터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를 가만히 귀에 대고 불러주면 좋아해서 그날도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날 바라보더니 한참 동안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사랑한다.’는 표현인데, 오래도록 감고 있는 건 많이 사랑한다는 뜻이다. 나는 열 때문에 갈라진 그녀의 입술에 뽀뽀를 해주고 볼을 맞대어 머리를 안아주었다. 양 손과 팔이 오그라들고 얼굴마저 뒤틀려 딴 사람처럼 모습이 변해버린 그녀, 그러나 마음속에 찌꺼기 하나 없이 씻어 개운한 천사가 되어 이 별을 떠났으리라 믿는다. 오랜 고통에서 벗어난 그녀의 또 다른 여행길은 행복하고 멋진 길이 되기를 빌고 또 빈다. 병상의 그녀 얼굴은 점차 변하여 일그러졌기에 그 얼굴을 보고 있으면 그 옛날 곱던 얼굴이 그리웠다. 나는 그 모자 쓴 아가씨와 병마에 시달려 뒤틀린 아내를 따로따로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리워하고 애틋해 했는지 모른다. 이제 애틋한 그녀는 다른 별로 여행을 떠났지만, 아직도 털실 모자를 쓴 귀여운 아가씨는 내 가슴에 살아 있다.
아내를 보내고 열하루가 지났다. 그녀를 돌보던 일 대신 뭔가 할 일을 찾겠다고 며칠을 끙끙대고 있지만 마땅한 일거리가 없다. 생각에 골똘하다보면 어느새 그녀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소스라친다. 자꾸만 뒤적거려서 좋을 것도 없지만, 너무 쉽게 지우려는 내 야멸찬 심사에 놀라는 것이다.
손이 시려서 장갑을 생각하다가 그녀를 생각했다. ‘눈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다. 유식한 한자말로 ‘정출어근(情出於近)’이라던가?
(2015년 10월 끝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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