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그것은 사랑이었다./수필

푸르고운 2014. 8. 26. 18:33

지난 619, 일기예보에 구름 많음이라는 날씨를 믿고 자전거로 옥정호를 돌아보기로 했다. 현충일에 학석리 고갯마루까지 갔다가 옛날 운암 나루를 못 보고 온 일이 생각나 다시 한 번 운암에 가보려는 생각에서다. 아침 일찍 전주 평화동 장승배기에서 출발하여, ‘장승배기 길을 따라 내려가 세내교에서 천변 산책로에 들어섰다. 평일인데도 아침 운동 나온 사람들이 많다. 평화동에서 구이로를 따라 가는 길이 있지만, 자동차들이 많아 나는 자전거를 탈 때면, 항상 산책로를 타고 구이(九耳)면으로 간다.

짙은 구름이 낀 아침을 밟아 산책로를 따라 삼천 생태공원을 벗어날 즈음에는 기분 좋게 다리가 풀려 저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가뭄으로 삼천의 물이 바닥 수준이었지만, 가끔 메꽃이 수줍게 피어있고, 개망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외로운 자전거 꾼을 반겼다. 구이 저수지 무넘기 옆을 돌아 구이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나는 장거리를 갈 때마다 그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집에서 어설프게 먹기보단 내 입에 맞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좋다. 구이면 소재지에서 정자리 염재까지는 차량 운행도 뜸해서 거리낌 없이 달렸다. 거기서 소금바위 재를 넘어 쌍암리로 갈 생각이었다.

 

그 옛날 걸어서 넘어다니던 소금바위 재를 자전거로 넘는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이다. 45년 전, 몇 달 동안 운암면 쌍암리에서 신접살림을 했던 시절, 첫아이를 가진 아내를 위하여 전주에 나가, 귤이나 과일을 사서 버스를 타고 와 염재에서 내려, 한 아름되는 과일봉지를 안고 걸어서 넘었던 소금바위 재다. 염재에서 쌍암리까지 6km 길을 넘어오면 항상 밤이 되었다. 재를 넘을 때, 일행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나 혼자 좁고 험한 재를 넘으면 가끔 무서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우리 가곡이나 학교에서 배운 노래들을 큰 소리로 불렀다. 내 목소리가 컸고 지금처럼 소음이 많지 않아 나를 기다리던 아내가 알아듣고 마중을 나오기도 했었다. 1969년 봄부터 초가을까지 몇 달 동안이 우리 부부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여름 내내 밤마다 맑고 시원한 냇물에서 목욕했고, 오후에 퇴근하면 병을 놓거나 낚시로 피라미를 낚아 매운탕을 끓여 먹었다. 그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을 뒤돌아 쫓아갈 수 있다면, 내 다리가 부서지는 일이 있어도, 죽으라고 페달을 밟아 가보련만……. 그녀는 지금 전신이 굳어 눈만 깜박이며 요양병원에 누워있고, 나는 그날의 추억을 한 조각이라도 주워보려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가고 있다.

소금바위 재를 자동차로는 몇 차례 넘어보았지만, 자전거로는 처음이다. 재의 입구에서 고갯마루까지 3km이고, 잿마루의 표고는 300m이다. 그 정도 재는 수도 없이 넘어본 터여서 부담 없이 출발했다. 자전거를 타면서 고갯길을 오르는 일도 즐거움의 일부이다. 저단 기어로 시속 5~6km로 비벼 올라가면 못 오를 고개는 없었다. 높이 840m, 거리 6.5km의 백운-장수간 신암리 고개는 가파르고 길어서 단숨에 올라가기 벅찼지만,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가다 보면 고갯마루의 터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고갯길을 만나면 항상 신암리 고개를 생각한다.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오르는 것이다. 잿길은 간간이 자동차가 지나갈 뿐, 한적하다. 한낮이 가까워가면서 구름이 얇아져 해가 나와 뜨겁다.

 

뜨거움도 잠시, 올라가는 내내 내 머릿속은, 그 옛날 과일 봉지를 한가득 안고 재를 걸어 올라가던 예비 아빠의 기쁨과, 어서 빨리 올라가서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싶은 조바심으로 가득했다. 내 자전거는 어느새 타임머신이 되어 19696월로 나를 데려간 것이다. 한 아름의 과일은 사흘이 못 가 빈 봉지가 되었다. 밥은 손을 대는 둥 마는 둥 생각 없고, 과일만 먹어대는 그녀를 위해, 나는 수 없이 소금바위 재를 넘고 넘었었다. 쌍암리에 들어오는 전주행 버스를 타고 관촌을 거쳐 전주에 나가서, 과일과 군입정 거리를 산 다음, 운암 뱃마당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염암까지 가서, 소금바위 재를 넘는 일은 힘이 들 뿐 아니라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렇지만 봉지를 안고 집에 돌아가 배불뚝이 그녀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시간이나 힘을 들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 삶의 의미가 거기에 있었고, 온갖 기쁨이 그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 아름답고 황홀한 순간을 위하여 내 모든 것을 준들 아까울 것이 없었다. 그것은 온 세상을 장엄하게 울리는 종소리처럼, 내 가슴 가득 울려 퍼지는 감동이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아련한 추억을 거슬러 오르다 보니, ‘임실군 신덕면이라는 안내 표지가 서 있는 고갯마루에 도착했다.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산에 오르려 준비하던 40대로 보이는 사내가 자전거를 세우는 날 보더니,

아니, 젊은 사람인 줄 알았더니 노인이시네요. 오토바이도 힘들게 올라오는 고개를 설렁설렁 쉽게 올라오시는 솜씨가 대단하세요.”

, 이까짓 고개야 어렵지 않네. , 이 전화기로 사진이나 한 컷 찍어줘

그렇게 고갯마루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도라지를 캐러 왔다는 40대 사내에게, 잠시, 산에서 얻을 수 있는 버섯이나 더덕에 대해, 내 오랜 경험을 일러주고 운암면 소재지를 향하여 고갯길을 내려갔다. 간절한 내 마음과는 달리 찾아간 쌍암리는 적막했다. 수몰선 재설정으로 우리가 살았던 집도 거리도 모두 사람들이 떠나 폐허처럼 변했다. 부서지고 찌그러진 지난 세월의 흔적들은, 병든 그녀와 늙어 허술하게 된 나처럼 의미 없는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2014619, 나는 45년 전의 쌍암리 버스 정류소 앞에 서서 전주행 버스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그녀의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는 아기의 태동을 더듬고 있었다. 배불뚝이 그녀가 웃을 때, 드러나는 덧니가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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