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을, 그 깊은 계절을 보다/수필

푸르고운 2014. 9. 30. 20:17

가을은 비를 따라 익어가는 계절이다. 여름의 남은 기운이 한낮의 더위를 느끼게 하지만, 비가 한차례 내리고 나면 가을은 조금 더 깊어진다. 계절의 변화는 느슨해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변화에 대응하도록 유도하여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가을의 맞는 마음은 피아노 줄처럼 팽팽하지 않다. 가을을 보는 마음은 풍요롭고 아름답고 슬프다. 더구나 노년에 맞이하는 가을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 더해져 더욱 애처롭다.

오늘 나는 꽃밭정이 복지관에서 친구들과 헤어져, 아내가 있는 요양 병원에 가면서 비 내리는 학산 자락을 넘어갔다. 완산 중학교 교정을 거쳐 가는 길을 마다하고 산길로 넘어간 것은, 내리는 비에 노랗고 붉은 가을 잎들이 더욱 짙은 가을 색을 내는 현장을 보고 싶어서였다. 산길이라야 겨우 4~5m에 불과하지만, 가을을 보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소나무 숲 속에 드문드문 섞여 서 있는 활엽수 잎들은 이미 낙엽으로 내리기 시작하여, 아직은 푸른 풀밭에 울긋불긋 무늬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여름 내내 매미와 노린재, 자벌레, 딱정벌레들의 놀이터가 되었던 푸른 잎들이, 태어난 나무를 한 해의 길이만큼 자라게 하고, 낙엽이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아름답고 장엄한 의식을 치르는 현장이었다. 굳건히 서 있는 소나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치러지는 낙엽들의 귀토(歸土) 의식은 쓸쓸하고 애잔했다. 비가 내려 팔랑거리며 멋들어진 마지막 춤을 출 수 없었고, 비에 젖은 채 그저 몸을 약간 흔들며 내려오는 일이 전부였다. 마른 날이었다면, 먼저 떨어진 낙엽들이 바람의 힘을 빌려 쏴아하며 박수라도 쳤을 터이지만, 그마저 허락되지 않는 쓸쓸한 의식이 빗속에서 치러졌다. 내가 숲속 나라의 언어를 알았다면 한마디 아쉽고 고마운 인사라도 했을 참이다.

가을은 풍성한 결실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생의 끝자락을 밟고 선 노년에게 가을은 스산하고 쓸쓸한 마음이 더욱 짙어지는 계절일 뿐이다. 우리말의 가을은 수확을 뜻하는 가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농업중심의 민족 언어로 적합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가을의 뒤에 오는 텅 빈 논밭의 쓸쓸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내 나이 탓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영어에서도 가을을 ‘fall'이라고 써서 떨어지다‘ ’감소하다등의 의미와 같이 쓴다. 아마, 사람의 정서 속에 가을은 풍요보다는, 상실과 외로움의 뜻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지 않을까 싶다.

병원에서 아내를 살펴보고 샛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오다가, 광진 아파트 옆, 밭 가장자리에 노란 탱자를 잔뜩 달고 있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보았다. 매년 그 울타리 옆을 지나가면서 탱자를 보면, 어릴 적에 내 훌륭한 장난감이었던 탱자를 따고 싶었다. 노랗게 익은 탱자를 따다가 비누를 풀어 깨끗이 씻으면, 약간 푸른빛이 감도는 짙은 노랑이 여간 고운 게 아니었다. 밀감이나 오렌지의 향기와 비할 수 없는 청량한 탱자 향을 나는 퍽 좋아했다. 차를 갖기 시작해서는 매년 탱자를 구해 바구니에 담아 넣고 다녔다. 그러면서 탱자를 볼 때마다 어릴 적에 탱자를 갖고 놀던 추억을 떠올리곤 했다. 새파랗게 어린 탱자를 따서 고무줄 새총에 걸어 여학생 엉덩이를 맞히고 달아났던 일도, 노랗게 잘 익은 탱자를 깨끗하게 씻어 책상 위 책꽂이 앞에 한 줄로 세워두고 소설책을 읽으면, 탱자 향기 속에서 주인공들과 같이 있는 듯, 아름답던 기억도 떠올랐다. 하지만 매년 내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보면 노란 탱자는 한 알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마도 밭 주인이 그걸 따서 어떤 용도로 쓰든지, 아니면 내다가 팔든지 하는 듯했다. 그것도 농사 일부라고 생각되어서 내가 함부로 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가 밭에는 하얀 취 꽃이 시들어가고, 쑥부쟁이 틈에 구절초 한 포기가 제법 암팡진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구절초가 핀 걸 보면 가을은 이미 한창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벼 베기가 시작되어 본격적으로 햅쌀이 나오기 시작했고, 산에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10월이 낼모레다. 가을 문화축제가 예제 없이 예고되어 있고, 103일부터는 정읍 구절초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바야흐로 문화의 계절이자, 여름의 끈적거림에서 벗어나 넉넉하고 고슬고슬하고 향기로운 계절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좋은 계절에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생각하는 여유를 갖고 싶다.

가을비에 들썽하여 산길로, 남의 탱자나무 울타리 밑으로, 다니며 내 삶의 갈피를 뒤적거려 보았다. 나이 들어 허기진 마음에 그나마 건져 올릴 추억이라도 한 토막 있어 다행이었다. 이제 내가 즐겨 타는 자전거의 계절이기도 하다. 볕도 따갑지 않고 땀도 흐르지 않아, 얼마든지 달리고 싶은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마음이 살찌는 계절이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여, 더 많이 달려서, 이 가을에는 두고두고 보아도 다시 읽고 싶은 그런 글을 써보련다.

(14.09.29)

* 예제 없이 : 여기나 저기나 구분 없이

* 들썽하여 : 어수선하게 들떠 가라앉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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