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씀이
‘우리 것은 아름다운 것이여!’ 라는 말이 새삼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우리 국민의 머릿속에 과연 ‘우리 것’을 지키고 아끼려는 생각이 들어 있는지 궁금해서다. 뚱딴지같은 바탕을 깔고 뭔가 헛소리를 지껄이려나보다, 짐작했다면, 그 생각이 맞다. 헛소리 같은 푸념을 하고 싶어서, 정말 답답하고 원통해서 이 글을 쓴다.
얼마 전에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요즘 우리말 활용에 필요한 자료를 만들고 있다는 것과 그것의 활용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는 깜냥으로 설명을 하는데, 듣는 상대방은 절반도 채 듣지 않고 심드렁했다. 그나마 내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다 듣더니,
“김 형은 아직도 청소년 같은 기개가 남아있어서 그렇게 팔팔한 모양이구먼. 우리말? 아직도 우리말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니 다행이네. 종편방송의 제목이 ‘문제적 남자(問題的 男子)’라고 공공연히 일본 용어로 나와도 방통위라던가 하는 기관은 말 한마디 없고, 공중파 방송의 출연자들도 온갖 외국어를 다 끌어서 쓰고, 자막으로도 나오는 세상이야. 순수 우리말 쓰는 사람이 지금 어디 있어? 내가 순수 우리말로 글을 썼더니 어떤 사람이 ‘지금은 잘 쓰지도 않는 어려운 단어를 우리말이라고 쓰는데,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길거리 광고판은 모두 외국말이고, 상품도 우리말 이름은 1/3이나 될까? 이명박 정권 이후로 우리말은 참혹하게 말살되고 있어. 김 형이 그 자료 죽어라 만들어도 그걸 활용하는 사람은 몇 안 될 거야. 그럴 시간이 있으면 글이나 열심히 써. 수필이 점점 틀이 잡히던데 그거나 잘 써봐. 내가 열심히 읽어줄게.”
그날 이후로 내 우리말 작업은 거의 멈추어 있다. 그 사람의 말마따나 내가 눈 아프게 작업해서 과연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일찍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이 내 작업을 멈추게 했다.
그런데 오늘 또 한 번 내 일이 헛일이라는 충격을 받았다. 올봄에 꽃밭정이 수필반에 등록했다가 건강 때문에 그만두었던 이 아무개님을 꽃밭정이 카페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론계 선배인 그분은 내가 작업하는 우리말 활용자료에 관심을 두고 있다며 ‘도사리 말모이’라는 우리말 사전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도사리’는 열렸다가 자라지 못하고 떨어진 과일을 말하고, ‘말모이’는 말을 모아놓은 것이라는 뜻이니, 예로부터 쓰이다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모아 놓은 책이라는 뜻이다. 그분과 헤어진 뒤 바로 전주 홍지서림에 전화해서 책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하늘연못’이라는 출판사가 발행하여 2010년에 절판된 책이라고 했다. 혹시나 출판사에 재고분이라도 있나 해서 가까스로 출판사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몇 년 전부터 사용하는 전화인데 출판사와는 무관하다.” 고 했다. 어딘가 흔적이라도 있을까 해서 가능한 모든 연결을 시도했더니 어느 분이 하늘연못을 조금 알고 있다며
“좋은 분들이 좋은 일을 하려고 정말 아름다운 하늘연못을 만들었지만, 사람들의 냉담으로 문을 닫고 흩어진 걸로 알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말의 흔적을 찾아내고 좋은 책을 몇 권 만들었는데, 너무도 관심이 없어서 책이 초판조차 다 팔지 못하고 말았다.”
“전국에 시인, 수필가가 몇 만 명이라는데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출판사 관련자의 말을 직접 듣지 못해서 안타까웠지만, 내게 이야기해 준 이의 말이 거의 틀림없을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그들이 책을 만들고 독서를 권장하며 노력하는 기본 경비라도 나왔더라면 문을 닫는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타까운 그 사연은 내 마음을 퍽 무겁게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우리말인가? 세상의 모든 일을 그려낼 만큼 다양하고 세밀한 형용사와 부사, 미세한 움직임까지 한 올, 한 올 그려내는 동사, 이런 아름다운 말이 어느 나라에 있던가? 어느 언어도 따라올 수 없는 찬란한 말과 문자를 가진 게 우리나라다. 더구나 한글은 세계의 모든 학자가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문자라고 칭송하는 최고의 글자가 아닌가? 아름다운 말과 글자를 가진 우리가 우리 것을 멸시하고 ‘세계화’라는 명분 아래 영어를 숭상하고 영어에 목매어 사는 일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우리말을 모르는 건 당연하고, 영어를 쓰다 틀리면 얼굴을 붉히는 사람들, 행정관서의 공문에서도 공공연히 외래어가 판을 치고 있으니, 지금 자라는 어린이들이 어른이 될 때쯤에는 아예 우리말이 공용어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학생들은 말을 줄여 쓰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 날마다 새로운 말을 생산하여 언어의 세대 차이가 심각하고, 외국어와 합성하여 더욱 고유 언어를 오염시키고 있다. 우리말을 바르게 쓰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은 공영방송에서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을 뿐, 민방이나 종편에서는 공공연히 외래어가 안방을 차지해 으스대고 있다. 우리말은 외래어를 연결하는 조어(助語) 정도로 전락했고, 곁들이는 말 정도의 위치에 있어도 누구 하나 걱정하지도 않는다. 방송심의위원회는 정권의 홍보나 보호에만 신경을 쓰고 언어훼손에는 아무런 제재가 없다. 어린아이가 영어를 조잘대면 신동이 나왔다고 손뼉을 치고, 우리말은 아무렇게나 해도 고쳐주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시시한 국어야 학교 가서 시험 볼 때만 잘 쓰면 된다.
아프리카의 오지 소수민족도 자기들의 고유 언어와 전통을 소중히 지키려하고 유지하려 애쓴다. 그런데 오랜 역사와 훌륭한 문자인 한글을 가진 우리는 지난날 중국의 한문에 목매어 중국의 공자(孔子)를 성현으로 받들기에 혈안이더니, 이제는 영어를 숭상하고 미국 물을 먹기 위해 부끄러움조차 모르고 덤빈다.
나라의 문화는 말과 글이 바로 쓰이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운데서 발전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51번째 주(州)가 아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온 대한민국이다. 영어와 일본어가 우리말을 오염시키는 현장을 그저 방관한다면 우리도 공동정범(共同正犯)이 된다. 시와 수필을 쓰거나, 쓰겠다고 공부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우리말을 지키고 조금이라도 더 바르게 쓰도록 노력하는 것이 본분이 아닐까?
지금 내가 작업하고 있는 ‘우리말 쓰임새 연구’가 어느 누구의 관심을 받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 반드시 작으나마 열매를 맺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만들어 놓으면 언젠가, 단 한 사람이라도 이를 활용하고 고마워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땀을 흘릴 각오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달라 …… 쓰기 편하게 할 따름이니라.’ 하신 세종임금의 뜻은 한글날에만 잠시 스쳐가는 넋두리가 아니다. 아름다운 우리말과 한글은 나라와 겨레의 내일이며 든든한 희망의 자산이 아닌가?
(2015.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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