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내와 여섯 마누라
나는 요즘, 잘난 사내 하나가 여섯 마누라와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광경을 보는 즐거움에 자주 시간을 뺏기곤 한다. 큰 마누라는 임신해서 배가 동산만 하게 부풀어 있고 둘째 마누라도 머지않아 임신을 하려는 듯 서방 각시의 태도가 사뭇 달라져 보인다. 사내는 요즘 종일 둘째 마누라를 쫒아 다니느라 가끔은 밥을 먹는 일조차 뒷전이다. 그리고 나머지 셋째부터 여섯째 까지는 아직 임신할 정도로 자라지 못해서 열심히 먹으면서 어른이 될 날을 기다리는 듯하다. 웬 아닌 밤중에 홍두깨 타령이냐고? 나이 살이나 먹은 영감이 남의 집이나 들여다보고 있느냐고 핀잔을 해도 나는 할 말이 있다. 내 거실이자 작업실인 방에 작은 수조가 있고, 그 안에 구피(Guppy. 열대어종류) 수컷 한 마리와 암컷 여섯 마리가 즐겁게 살고 있는 이야기를 하려는 참이다.
이 작은 아이들이 나하고 인연을 시작한 때는 지난 연말께 이다. 이곳 효자동에 이사를 하고 혼자 덩그러니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멀리 아이들 놀이터와 사방으로 우뚝 솟은 아파트 군락이 보일 뿐이다. 시야도 조금은 시원하지 못하고 집안에는 뭔가 살아 움직이는 기미가 없어 마음까지 외로워지는 것 같았다. 반려동물을 키워볼까? 나는 반려동물을 퍽 좋아하지만 그들과의 이별에서 몹시 마음이 아팠던 일이 있어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터라 아예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하던 끝에 작은 딸아이가 구피를 제법 많이 키우고 있었던 기억이 났다. 딸네 집 자배기 속에서 조그만 녀석들이 귀엽게 헤엄치며 노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겼던 일이 불현 듯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다. 바로 딸에게 전화를 했다. 딸은 대환영이라고 했다. 작은 녀석들이지만 활발하고 귀여운데다, 새끼를 직접 낳는 모습도 볼 수 있어서 마음 붙이기에 적당하다는 설명도 했다.
수조와 여과장치 등 작은 녀석들을 맞이할 준비를 끝내자, 구피 21마리 대 식구가 도착했다. 산란이 임박한 암컷도 몇 마리 있었고 아직은 성어가 안 된 아이들까지 수조에서 활발하게 노는 모습은 참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구피를 선택한 일은 퍽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던가? 초보 구피 할아비의 시련이 시작된다. 딸이 구피와 함께 보내온 먹이가 며칠 만에 떨어지자 나는 인터넷을 뒤져 영양가가 높다는 모 회사 제품을 구입하여 먹였다. 그런데 이 사료는 녀석들이 잘 먹지도 않고 물에 기름기가 둥둥 떠 문제가 되었다. 기름기 때문에 물을 자주 갈아줘야 했고, 물의 온도를 맞추어 주겠다고 수중 희터를 사용한 것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수온이 급히 올라가 뒤늦게 조치를 했지만 구피들이 연신 죽어갔다. 잘 놀던 귀여운 것들이 하나, 둘 죽어갈 때 내가 공연한 욕심으로 앙증맞은 것들을 죽인다는 자책감에 괴로웠다. 그래도 몇 마리라도 살려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갖은 노력을 다했다.
그 가운데서도 만삭이던 구피 두 마리는 새끼를 낳았다. 다른 성어들이 새끼를 잡아먹는 습관이 있다는 들은풍월에 따라 작은 어항에서 새끼를 낳게 했다. 물고기들은 알을 낳아 부화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구피는 알을 뱃속에서 부화시켜 새끼로 낳는 태생(胎生)어종이다. 구피는 산란 때가 되면 먹이 활동을 하지 않고 수조 벽을 연신 오르내리며 어딘가 다른 산란장소를 찾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어쭙잖게 구피 기르는 법을 배운 탓에 귀여운 것들을 희생시킨 죄를 그나마 새끼들을 무사히 받아낸 것으로 사(赦)하여 지지는 않을 터이지만 위안 삼을 핑계는 되었던 듯하다. 어미는 1~2분마다 한 마리씩 모기의 장구벌레 크기만 한 새끼를 쏙 쏙 낳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시름시름하다가 죽었다. 다른 구피들처럼 쇼크로 죽을 처지였음에도 새끼를 낳고 죽겠다는 본능으로 분만을 마치고 죽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미안하고 마음이 짠하기 그지없다. 두 마리가 낳은 새끼는 모두 40마리 정도 되었는데, 그런대로 구피의 모양이 잡힐 때까지 자란 새끼는 20마리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도 내 실력이 부족하여 반수 이상을 희생시킨 게 아닌가 싶다.
딸이 준 20여 마리 구피가운데 살아남은 녀석은 단 한 마리였다. 모두 기운을 잃고 시들시들하다가 하나씩 죽어가더니 마지막 한 마리가 남았다. 대견하다는 생각으로 새끼들 가운데 살아남은 20마리와 합방을 시켰다. 새끼 구피들이 큰 고기를 대장삼아 잘 지내는 듯하였지만, 물갈이를 할 때마다 새끼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사료를 몇 번 바꾸어 보아도 잘 자라지 않고 고만고만하여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항 속에서 끔찍한 광경을 보았다. 한 마리 큰 녀석이 제일 작은 구피를 공격하여 죽이는 광경을 본 것이다. 곧 큰 녀석을 격리시켜 놓고 숫자를 확인해보니 겨우 9마리가 남았다. 그동안 큰 녀석이 작은 것들을 다 죽였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많은 숫자가 희생되어 마음이 쓰렸다. 답답한 사정을 딸에게 말했더니, 첫째는 사료가 나빠서 발육이 늦어졌을 것이고, 가끔 포악한 녀석들이 나오는데 격리 시키든지 버리든지 해야 다른 고기들이 안전하다고 했다.
혼자 놔둔 큰 녀석은 어느 날 원인 모르게 죽었다. 다 큰 암컷이 수정을 못해 죽었는지 사정은 모르지만, 포악한 녀석이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내 무지함을 달랬다. 그리고 남은 녀석들은 두 마리만 희생되고 지금은 수컷 한 마리와 암컷 여섯 마리가 잘 지내고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어느 것은 어른이 되어 새끼를 배고 있고, 어느 것은 아직도 한참 더 자라야 하는지 초보 구피 할아비는 알지 못한다. 다행이도 좋은 사료를 구해서 먹이면서 구피들의 동작이 눈에 띄게 활발하고 수조 속의 수초사이를 헤엄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일곱 녀석 가운데 단 한 마리만 수컷인데 개천의 불거지가 혼인 색을 띠면 아름답듯이, 빛나는 몸과 아름다운 지느러미를 흔들며 여섯 암컷들을 거느리고 있다. 여섯이나 되는 암컷들은 서로 싸우지도 않고 수컷을 따라 노니는 모습이 퍽 부럽다. 구피의 수조에 깃든 평화와 사랑이 오래도록 이어져 새끼들이 나오고 식구가 불어나도 한결 같기를 기대한다.
나도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저 수컷 구피처럼 멋진 구피로 태어나 암컷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볼 수 있을까?
(20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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