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칼럼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생각하며

푸르고운 2016. 12. 13. 23:38


중국 항저우에서 G20정상회의가 열렸다. 저성장 늪에 빠진 세계경제의 변화를 추구하는 회의였지만, 우리의 관심은 사드문제로 교착상태에 빠진 한중관계가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 모아졌다.

 

물론 그간의 중국 태도를 보아 관계 회복의 기미는 없었으나, 오랜 우의를 다져온 두 정상인지라 일말의 희망을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한 대로 시 주석의 태도는 싸늘했다. 정상회의 주최국으로 손님을 만나는 수준의 정상회담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박대통령은 북한 핵의 위협이 없어지면 사드도 필요 없다.”고 여태 해오던 말을 되풀이 하는 수준으로 사드 배치의 불가피함을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은 사드가 지역의 안정을 해치게 될 것이므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말았다.

 

그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흔히 나오는 수사가 아닌 특별한 의미의 구절을 인용했다. 그는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중국 국민이 김구 선생을 보호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김구 선생의 아들 김신 장군이 1996년 항저우 인근 하이옌을 찾아 음수사원 한중우의(飮水思源 韓中友誼)’라는 글자를 남겼다고 소개했다. 이 문구는 김신 전 공군참모총장이 중국 국민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아버지 김구 선생을 도와주었던 일에 감사하는 의미로 화강암에 붉은 글씨로 새긴 내용이다.

 

음수사원이라는 말은 중국 남북조시대 유신(庾信)이 쓴 유자산집(庾子散集)음수사원 굴정지인(堀井之人)’이라는 문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물을 마실 때는 물이 어디선 온 것인지 생각하고 우물을 판 사람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해석하여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문구로 학교의 교훈이나 단체의 신조로도 많이 쓰인다고 한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음수사원을 들먹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국인들이 보호해준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자 조선인들은 동북항일연군을 조직하여 중일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치열하게 싸웠다.

 

그 후 1937년 중일전쟁으로 중국이 패망하여 일제에 유린되고 1946년 일본 항복까지 중국 팔로군의 주력이 조선인 이었고, 중국공산당의 공산혁명 노정에서도 조선인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중국의 항일 투쟁사에서 조선인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역사가 달라졌을 지도 모를 만큼 그 역할은 대단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덮어두고 되레 우리에게 임시정부를 보호해준 일을 잊었느냐고 나무라는 중국의 태도는 어불성설이다. 중국이나 우리나 같이 일본에 대항하여 싸운 동지였다는 말을 했더라면 타당할 것이지만, 오히려 우리가 중국에서 일제와 싸워 중국을 도와주었음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은혜운운하는 일은 불쾌하다. 한심한 일은 대통령이나 회담에 참석한 보좌진 누구도 이일에 대해 함구무언, 마치 훈계를 들은 듯한 정상회담이 되었다는 점이다.

 

엊그제 8.15경축사에서 안중근의사의 순국 장소를 뤼순이 아닌 하얼빈 감옥이라고 말한 대통령에게 역사 인식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하지만, 보좌진이라도 시 주석의 말이 터무니없음을 귀띔해 주었어야 옳다. 하긴 청문회에 등장하는 각료나 보좌진들의 면모를 보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는 데는 모두 한가락 하는 듯하지만, 역사인식이나 사회정의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하니 이 또한 헛된 바람일 뿐인가 싶다.

 

더구나 지금 정부나 보수여당에서는 헌법에 명시되어있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1946815일을 건국절로 만들어 임시정부 자체를 부인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일을 상기하면 그따위 임시정부가 뭐여?”하는 생각으로 회담장에서 코웃음을 쳤는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훈계하는 듯 말하는 시 주석의 말뜻조차 모르고 음수사원이 무신 소리인지 우리가 알 필요 없다.”했던 것일까?

 

역대 어느 정부도 오늘처럼 머릿속이 텅 비고 국민정서 따위는 나 몰라라했던 일은 없었던 듯하다. 권력을 안겨준 국민을 생각하지 않는 정치, 주인을 무시하는 정치로 일관하는 오늘의 정부를 나무라는 뜻으로 음수사원은 적절한 말이 될 수 있겠다.

 

오늘 누리는 권력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생각해볼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2012년 선거 때에 국민들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선거구호를 믿었다. 그런데 지금 청년들은 헬 조선이라며 절망하고 있다. 이제라도, 많이 남지 않은 임기동안 불통을 끝내고 국민을 위해서 일해주기를 바라는 게 어리석은 일일까?

16.09.07 전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