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살면서 나름으로 이런저런 재미를 찾고 느껴가며 산다. 더구나 이렇게 덥고 견디기 힘들 때에 웃기는 일들을 만나면 잠시라도 어려움을 잊을 수 있어서 좋다.
요즘 내게 그런 기쁨을 선사하는 이는 존경해 마지않는 우리 대통령님이다. 엊그제 이정현 새누리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들여 그가 좋아한다는 냉면과 송로버섯, 캐비어, 샥스핀, 능성어 그리고 소갈비와 바닷가재를 곁들인 점심을 먹이는 사진이 퍽 인상적이었다.
평소에 찬바람이 휘이~하고 돌도록 차갑던 대통령의 얼굴이었는데, 이 대표가 마이크를 들고 뭐라고 하는 모습을 쳐다보는 표정은 “아이고, 저 예쁜 녀석”하고 바라보는 어머니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그런 표정이었다. ‘저런 얼굴이 바로 행복한 사람의 표정’이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을 보며, 내가 여태 보았던 대통령의 얼굴 가운데 단연코 최고라고 생각했다.
예쁜 자식을 위해 최고의 성찬을 차려놓고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저런 것이려니 생각해보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예쁜 사람이라 해도 공개적인 점심식사에 평민들은 구경도 못해보고 말로 들어도 무슨 음식인지도 모를 궁중음식을 차린 것은 이해부득의 일이었다. 먹이고 싶으면 나중에 가만히 불러 먹일 일이지. 흘흘.
나는 이런 저런 시련을 겪으며 철권을 휘둘러온 대통령의 가슴엔 미움과 투쟁심만 가득한 줄 알았더니 그 역시 여자의 마음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저런 얼굴과 마음으로 우리 국민들을 바라보았더라면 지난 4년 동안 이 나라가 ‘헬조선’이라는 절망의 세대를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오늘 대통령은 8.15기념사를 하는 자리에서 헬조선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자기비하와 비관적 사고가 넘치고 있다며 국민들을 나무랐다. 왜 헬조선이 나왔는지, 젊은이들이 절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말하지 않았다. 오래 전에 박정희가 말하던 연설처럼 ‘할 수 있다’ ‘자신감’ ‘공동체 의식’ 따위의 묵어터진 단어들만 쏟아냈다.
지금이 ‘콩 한쪽도 나누어 먹으며’ 어쩌고 하는 말이 필요한 때인가? 언론 보도를 보니 이런 연설이 ‘국뽕 연설’이라고 했다. -객관적 판단력을 잃고 애국심에 과도하게 취해 있거나 위대함만을 강조하는 연설-
젊은이들이 왜 절망하는지, 왜 자신의 텃밭에서 자기의 사진이 떼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을까? 일본의 눈치를 보는지 광복절 연설에서 당연히 언급되어야할 일제의 만행이나 오늘날 다시 전쟁가능 헌법으로 수정하려는 책동에 대해서 일언반구 말이 없이 미래지향적인 관계 어쩌고 하면서 어물거리고 말았다.
거기다가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남겼던 말을 인용하면서 순국 장소를 하얼빈감옥이라고 말하는 측은한 실수를 또 범했다. 생각해보면 연설문을 작성해주는 비서나 검토한 작자나, 그걸 몇 번은 읽어봤을 대통령이나 무식하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초등학생도 아는 일을 모르고 넘어가는 그들, 다시 생각하면 역사관도 없고 책임감도 없기 때문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가 잘못되었다고 국정화를 고집하며 누가 집필하는지, 어떤 내용을 기술할 것인지조차 꼭꼭 덮어두고 깜깜이 교과서를 만든다니 참으로 소가 웃을 일이다. 그 교과서에는 아마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순국한 것으로 쓰여 있는지 모를 일이다.
역사의식 문제는 또 있다. 헌법전문에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음에도 박대통령과 여당은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일로 생각하여 제68주년 건국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는 대한민국은 없었다는 말이다.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으면 일본의 강점 이후 우리나라는 온전히 일본의 영토였고, 국민은 일본 국민이었다는 말이다.
일본에 협조하고 충성한 친일파의 생각이 모두 그런데, 대통령의 생각도 그러하다면 이건 곤란한 문제다. 생각해보면 쉽게 답을 알 수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어서 일본과 싸우고 있었는데, 그 동안에 일본에 협조하거나 일본의 군인이었다면 그자는 민족반역자가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대한민국이 없던 시대에 일본국민으로 일본에 충성했다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해석을 하고 싶은 자들이 바로 친일파와 오랜 보수 세력들이다.
건국이 1948년이면 어떻고 3.1운동 때면 어떠냐고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16.08.16. 전주일보
'신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음수사원(飮水思源)을 생각하며 (0) | 2016.12.13 |
|---|---|
| “우리나라 정부는 아닌 것 같다” (0) | 2016.12.13 |
| '右병우’라 쓰고 ‘憂病牛’라 읽는다. (0) | 2016.12.13 |
| 뜨겁고 답답한 나라. (0) | 2016.12.13 |
| 꺄우듬한 나라(전주일보 4월 6일자) (0) | 2016.04.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