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칼럼

부끄러운 비선을 자르는 용기

푸르고운 2016. 12. 14. 00:02


어쩌다 이런 터무니없는 세상에 살게 됐는지 모르겠다. 맨 정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연이어 터져도, 책임을 져야 할 쪽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탈탈 털면 그만이다. 대통령은 국회를 고양이 쥐 잡도리하듯 혼내고, 국회는 장관 해임 건의안을 가결하고도 대통령에게 해임 요청조차 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눈치를 보고 있다. 야당은 2중대인지 들러리인지 모르는 애매한 태도로 끌려가며 입으로만 정권교체를 뇌이고 있다.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의 정국이 되자 조금 다소곳해 진 것처럼 보이던 청와대는 아직 논의 된 바 없다던 사드배치를 갑작스럽게 발표하면서 다시 강경한 자세로 돌변했다. 북한의 핵실험이 나오고 미사일 발사까지 이어지면서 안보를 구실삼아 박 대통령 특유의 돌파작전이 힘을 얻었다. 그 옛날처럼 국가 비상사태라도 선포하고 싶은지, 부끄러운 사건이 연일 터지는데도 비상시국이라는 미명하에 정부를 흔들기 위한 폭로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지지자들에게 각인시키기 바쁘다.

 

정권 말기에 들어서면서 알 수 없는 인물들이 권력 주변과 내각에 몰려들어, 국회 청문회에서 누구하나 청문보고서조차 채택할 수 있는 인물이 없었는데도 대통령은 청문결과를 무시하고 모두 임명했다. ‘여소야대면 뭐하냐? 내 맘대로 하겠다.’는 마이 웨이에 국민은 할 말이 없다. 국회는 명목상 여소야대여서 여전히 청와대와 여당의 힘과 전략에 끌려 다닐 뿐이다.

 

진경준과 우병우,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사건을 보도하며 청와대와 각을 세우던 보수언론 조선일보도 송 주필의 대우조선 관련 문제가 불거진 후에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사그라지는 불꽃으로 알았던 청와대의 힘이 아직도 법조계와 정보기관을 확실하게 잡고 있어서 아직도 뜨겁다는 기미를 알아챈 것이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입을 닫자 한겨레가 후속보도를 계속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한 갖가지 비리 가운데 으뜸은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설립에 이은 특혜의 정황들이다. 두 재단에 8백억 원 가까운 거금이 순식간에 모아지고 설립 인가를 몇 시간 만에 뚝딱 내준 일이나, 두 재단의 서류가 한 판에 찍은 듯이 닮아 있는 정황들이 막강한 뒷심이 작용했음을 보여주었다. 또 두 재단은 설립한지 몇 달 만에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동행하여 행사를 주관하고 이권을 따내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세웠다. 이런 일에는 뭔가 드러나지 않는 힘이 개입되기 마련이고, 떳떳하지 않은 명분과 어찌할 수 없는 질긴 끈이 권력의 정점과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다.

 

언론에 드러난 그 실체는 박 대통령과 여러모로 인연이 닿고 있는 최순실(정윤회의 전 부인. 이혼 후 개명, 최서원)이었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검찰 조사에서 우리나라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3위가 대통령이라고 말할 만큼 대통령을 좌지우지 한 인물이다. 들리는 말로는 변호사인 우병우를 정무비서관으로 추천한 것도 최순실이고, 대통령 취임 후에 생면부지의 인물들이 깜짝 발탁되어 청문회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었던 배후에도 정윤회와 최순실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런 비선 실세 비리는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선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날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인 현철 씨의 국정개입이 문제된 적이 있고 몇몇 대통령 가족이 입줄에 오르내렸지만, 최 씨처럼 다방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는 없었다. 이런 비리는 부끄럽고 창피한 후진국형 정치비리이다.

 

언론은 심지어 최 씨를 대통령의 오장육부라고 표현한다. 오장육부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장기 전부를 말한다. 음식을 소화하여 몸에 영양을 공급하고 찌꺼기를 배출하며 신체기능의 밸런스를 잡아주는 게 오장육부다. 오장육부의 어느 것 하나라도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다. 다시 말하면 박 대통령과 최 씨는 한 몸이나 진배없다는 말이다.

 

그동안 이루어진 깜깜이 인사의 배경이 최 씨였고 이상한 문화재단의 배후가 최 씨였다면, 대통령은 국민을 속이고 배신한 셈이 된다. 국민이 선거를 통해 부여해 준 권력을 법에 의하지 않고 임의로 나누어 줄 수는 없다. 대통령은 국민의 위임을 받은 관리자이지 제왕이 아니다. 법으로 위임된 한도 안에서 가장 슬기롭게 나라를 이끌어가 달라고 뽑아준 대통령이 그 권한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거나 법이 정하지 않은 보좌진의 뜻대로 국정을 농단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비선을 잘라 그동안의 오류를 시정하며 털어낼 것을 털어버리고 임기 끝을 보낼 용기를 내야 할 때다.

16.10.05. 전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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