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고등학교 동창생 3명이 노고단을 찾았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까지 약 한 시간의 거리를 오르내리는 코스가 맘에 들지 않았지만, 허리가 불편한 친구의 운동을 위해 동행한 것이다. 지리산 등산 코스 가운데 가장 난도가 낮은 이 코스는 노인들이나, 초보 등산객에 알맞다. 성삼재에서 4.7km 거리이지만, 질러가는 지름길이 있어 웬만하면 1시간 이내에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코스를 제일 싫어한다. 돌을 깔거나 시멘트, 또는 강화목으로 만든 길은 딱딱하고 정감이 없어서 정말 피하고 싶다. 내 발이 석축이나 시멘트에 익숙하지 않은 때문이다.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 정상까지 인공구조물만 밟는 이런 걸 등산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코스는 불편했지만, 가을꽃이 피기 시작하는 노고단은 황홀한 자연의 수채화가 펼쳐진 거대한 『캔버스』였다. 하늘은 물감을 푼 듯 짙푸르고, 오후의 햇살에 꿰인 솜사탕 구름이 발아래서 두둥실 떠 눈부신데, 산구절초·산나리·산국화와 이름 모르는 멋진 꽃들이 수없이 피고 있었다. 붉은 듯 희고, 푸르고, 노랗고 감히 글로 그려내지 못할 형형색색의 꽃이 장관을 이루어 발바닥의 불편함을 개운하게 씻어주었다.
거의 다 내려오다가 특별한 이들을 만났다.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이 도우미들의 팔을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약 열 쌍의 그 특별한 등산객들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텅 비는 그런 느낌이 지나갔다. 저들이 어찌 여기까지 왔는지 쉽게 생각을 하지 못해서이다. 그러다가 언젠가 모악산에서도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울퉁불퉁한 모악산을 올라갔던 그들이라면 이 노고단 길은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안성맞춤의 길이 아닌가?
내가 청각장애를 극복하며 살 듯, 그들도 눈은 보이지 않지만, 정상인과 같이 산을 느껴보고 싶어서 왔을 것이다. 그들이 상큼한 바람과 도우미의 설명을 들어 느끼는 경치가, 오늘 내가 본 『캔버스』보다 훨씬 아름다운 광경이 되기를 빌며 산에서 내려왔다. (1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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