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은밀하게, 향기롭게/5매수필

푸르고운 2014. 9. 9. 21:58

버섯을 말할 때, 그 으뜸이 송이버섯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버섯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천만의 말씀이다. 버섯에도 서열이 있다. 순서를 말하면, 1 능이, 2 표고, 3 송이, 4 싸리의 순서다. 첫째인 능이는 향버섯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처럼 독특한 향이 난다. 냄새 자체가 향기롭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능이를 고기요리에 넣으면 쓰인 재료 모두의 맛이 향기롭고 맛있게 변한다. 강력한 천연 조미료인 셈이다. 그래서 능이는 귀한 대접을 받는다. 더구나 채취시기를 조금만 놓쳐도 벌레가 생겨 맛이 변하거나 썩어버리기에 더욱 귀하다. 둘째인 표고는 재배 아닌 자연산을 말한다.

오늘 아침에 내 ‘산 벗’과 함께 능이를 찾아 나섰다. 그는 뜰에 꽃무릇이 피었으니 능이가 나왔을 것이라며 새벽같이 전화를 해 주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산길을 올라가는데, 앞서 온 자동차가 석 대나 보였다. 이미 능이가 나온 것이 확실하다. 우리가 올라가는 산은 가파르고, 새벽 비가 내려 나무와 낙엽과 흙이 모두 젖어 미끄러웠다. 나뭇가지를 잡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는 가파른 비탈을 헤매다가 드디어 능이를 만났다. 나무 밑 낙엽이 쌓인 곳에 보호색으로 위장한 능이가 은밀하게 ‘윙크’를 보내고 있었다. 반가워 조심스럽게 따면서 보니 벌써 작은 날벌레들이 붙어있었다. 선도鮮度가 3등급 정도지만 쓸 수 있는 정도였다. 4시간 남짓 비탈을 헤맨 끝에 열다섯 개의 크고 작은 능이를 찾았다. 비교적 깨끗한 버섯 6개만 담고, 나머지는 친구에게 주었다. 집에 돌아와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내고 칼로 여러 조각으로 갈라, 채반에 널고 선풍기로 빨리 마르도록 해놓았다.

오늘 산행은 가파르고 미끄러워 힘들었지만, 귀한 버섯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버섯들이 탄탄하고 상큼한 것이었으면 더욱 좋았으리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나마 만나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고마운 일이다. 언제 싱싱한 능이를 따서 좋은 이들과 능이 파티를 해 보면 좋겠다.

(201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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