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34~6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지쳐 세상만사가 귀찮다. 계속되는 열대야에 자다 깨다 하다가 아침을 맞으면 어제의 피로가 가시지 않아 더욱 하루를 보내기가 힘들다. 다음 주에는 더위가 한풀 꺾일 것이라는 예보가 있지만, 기상대 예보조차 청와대나 정부의 말처럼 도대체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렇게 더운 때에, 서민 부모들은 전기요금 폭탄에 살림살이가 휘청대는 일이 두렵고, 유독 용돈이 더 드는 휴가철 아이들의 여름특강 학원비를 대기 위하여 에어컨 리모컨을 감출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세계 최악인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때문이다. 대기업의 전기요금은 수출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헐한 산업용 요금에서 더 할인해 주면서, 가정용은 1단계 요금의 11.7배까지 누진 부과하는 나라는 ‘대한미국’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나라 밖에 없다.
국회 박주민 의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20대 기업이 혜택 받은 전기요금 액수는 3조5천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분기마다 수 조원의 수익을 올려 막대한 배당금을 나누는 삼성전자가 4천291억원으로 가장 많고, 포스코, 현대제철, 삼성디스플레이 등이 뒤를 잇고 있다.
전체 산업용 전기 원가 회수율은 2012년 89.5%, 2013년 97.9%, 2014년 101.9%로 매년 오르고 있는데도 20대 기업은 3조 5천억원의 할인 혜택을 받았다는 것은 기타 중소기업들이 그들이 할인 받은 금액을 부담해왔음을 말한다.
많이 버는 대기업은 자꾸만 퍼먹어 배가 터지기 직전이고 군소 기업과 영세업체들은 연명할 기력을 잃어 가는데, 정부는 대기업이 돈을 더 많이 벌게 하는 방법을 찾느라 열심이다. 그렇게 해서 대기업이 잘 버는 동안, 국민들은 창자를 조이며 훌륭한 대통령님의 눈치나 보라는 그런 경제가 ‘창조경제’인 듯하다.
요즘 이 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이들은 새누리당 대표로 선출된 이정현 의원과 박대통령인 듯 보인다. 한사람은 ‘미천한 자신을 발탁하여 측근 참모로, 국회의원에 재선하도록 해준 대통령님’의 뜻을 받들어 일사분란하게 여당을 이끌어 충성할 수 있어 미치고 환장하게 기쁘고, 또 한 사람은 불쑥불쑥 들어 받으며 속을 썩이던 여당 대표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절대 충신이 맡아서 흐뭇하다.
4.13 총선 이후 끊임없이 추락하는 국민들의 지지도쯤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두 사람 다 입만 열면 국민을 앞세우는데, 과연 그 마음속에 국민은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 새누리 대표가 당선되자 바로 청와대 회동이 이루어졌는데, 거기서 가정용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이 거론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이튿날 바로 누진제 변경 안이 나왔다.
터무니없는 전기요금을 시정하는 일조차 대통령이 개입해야 되는 게 이 나라다. 그런데 전기 요금 조정 문제는 한시적으로 누진 단계별 사용량을 50kw 늘린다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생색은 열두 발이고 내용은 20%정도 감면되는, 그나마 7~9월까지 요금에 한정되어 ‘언 발에 오줌 누는’ 대책이 되었다.
국민들의 고통은 아랑곳없고 오직 돈과 권력을 쥔 1% 만을 위하는 듯 답답한 정부에 오늘도 국민들은 열 받고 있다. 40도에 육박하는 도심의 찜통더위보다 한심한 정부의 태도에 국민은 더 끓어오르는 것이다.
한국전력은 1989년에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이다. 전기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면서 그동안 8차례나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매년 수조원의 이익을 내서 작년에만 6천300억원이 외국인 주주에게 배당되었다고 한다.
국민들이 죽지 못해 쓴 바가지 전기요금이 외국인 주주에게 배당되고, 대기업의 전기요금을 깎아주는데 쓰였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여소야대의 정국이 되었으니 이젠 한국전력도 손을 보아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불필요한 고위직도 정리하고 영원한 철밥통의 사원도 인력수요를 정확히 파악하여 몸집을 줄여 비용을 줄이고, 대기업에 무한 충성을 하듯 깎아주던 전기요금도 정상화해야 한다.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서울 쪽방촌 사람들의 기사를 보았다. 1평이 채 안 되는 창문 없는 방에서 전기요금이 무서워 선풍기도 돌리지 못하고 사는 노인, 선풍기가 아예 없어 허덕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다.
이런 어려움은 비단 서울의 쪽방촌 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전라북도에도 도시의 골목 마다 비좁은 단칸방에서 더위에 헐헐거리는 노인과 장애인, 병으로 건강을 잃은 이들이 상당하다.
가난 구제는 나라에서도 어쩔 수 없다는 옛말이 있지만, 어려운 이들이 조금이라도 허리를 펼 수 있도록 부축해줄 수는 있을 터이다. 적어도 이 더위 덕분에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살펴보고 관심을 갖는 도지사와 시장군수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16.08.13. 전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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