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없어진 직업 가운데 ‘굴뚝 청소부’가 있었다. 그들은 대나무를 쪼개어 길게 이은 줄기 끝에 나무뿌리로 결은 동그란 솔을 달아 만든 굴뚝쑤시개를 둘둘 말아 가지고 다니면서 “뚫어!”라고 외치고 다녔다. 아궁이에 나무를 때서 난방을 하던 시절이어서 나무를 태울 때 나온 검댕이가 들러붙어 굴뚝이나 방고래가 자주 막혔다.
서울에서는 “뚫어”라고 외치고 다녔고, 전주에서는 “굴뚝…!”이라고 했던 것 같다. 굴뚝 뒤에 ‘쑤셔요.’라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뒷말은 어물어물 거의 들리지 않았다. 방고래나 굴뚝이 막히면 아궁이에 불이 들어가지 않고 연기가 부엌에 가득해서 견딜 수 없었다. 물론 방구들도 따뜻해지지 않으니 막힌 고래나 굴뚝을 뚫어야했다.
고래가 막혀 불이 들어가지 않고 연기가 부엌에 가득했다가 굴뚝쟁이를 불러 청소를 하고 나면 불길이 방고래로 시원하게 빨려 들어가고, 방구들이 금세 뜨거워졌다. 그 따끈한 구들에 등을 대고 누워 있다가 잿불에 묻어놓았던 고구마를 꺼내어 먹으면 그게 바로 천국이었다.
요즘 뉴스를 보면 그 시절처럼 방구들이 막혀 불이 들어가지 않던 답답하고 매운 부엌에 들어있는 느낌이 든다. 차디차게 식은 방구들처럼 나라 경제는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 같고, 보다 못한 국민이 촛불을 들어 막혀 캄캄한 아궁이 속을 밝혀보지만, 아궁이 부넘기를 막은 옹고집 장애물 때문에 어렵다.
국회가 나서서 장애물을 치우기로 결정하는 탄핵을 의결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장애물을 치우는 결정이 옳은지를 따져봐야 한다니, 국민의 마음은 답답하고 다급하기만 하다. 도대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며 옹고집으로 똘똘 뭉친 이 장애물이 나라의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라니 문제다.
장작불이 방고래에 고루 퍼져 들어가도록 불고래가 경사를 이루어 올라가 고갯마루처럼 높직하게 올려 턱을 만든 부넘기는 아궁이의 불기운이 방구들을 핥으며 고래를 타고 뻗어가도록 만들어졌다. 부넘기를 잘 만들어야 불기운이 고루 퍼져 방이 고르게 덥혀진다.
그런데 이 부넘기를 꽉 틀어막고 한쪽만 약간 터놓은 게 우리 경제다. 그 한쪽에는 재벌과 1%의 기득권층이 가늘게 들어오는 불기운을 독점하고 있으니 다른 쪽은 냉골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도 순실인지 근실인지 하는 살붙이 비슷한 여자가 끼어들어 오는 바람에 지금은 아예 불길이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한다.
금방 신바람 나는 새나라를 만들 것처럼 국민 앞에 장밋빛 그림을 보여주었던 박 ‘대통령직무정지’님은 국민에게 약속한 거의 대부분의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어 팽개치고, 피보다 진하다는 순실이와의 인연을 위하여 헌신하는 일에 매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은 ‘직무정지’님과 최순실은 동격이거나 순실이가 높은 것 같았다고 증언했다.
콩 한 쪽도 나누는 사랑의 정신으로 국민이 준 권력도 사이좋게 나누거나, 아예 넘겨주고 시키는 대로 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며칠 전에 열린 재판에서 순실이의 눈빛은 지난번 우병우가 검찰에 등장하면서 기자를 쏘아보던 시선보다 더 독하고 야멸차 보였다. 마치 ‘네까짓 하찮은 것들이 감히 날 심문하느냐?’는 그 눈빛은 소름끼쳤다.
엄청난 양의 태반주사와 감초주사 등 예뻐지는 주사를 맞고, 얼굴 고치기를 즐겨하신다는 소문도 회자되고 있는 ‘직무정지’님은 측간에 대한 유난스러운 괴벽이 있다고 한다. 남이 앉았던 변기에 앉지 못해서 어디를 행차하면 화장실의 변기를 뜯어내고 새 변기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10분 남짓 머물 예정인 군부대 방문에서도 남자소변기를 뜯어내고 좌변기는 새것으로 바꾸었다가, 다녀간 뒤에 다시 남자 소변기를 다시 설치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해외순방에서 특급호텔의 화장실 변기를 바꾸고, 욕조의 손잡이도 새것으로 갈아 끼우는 야단법석을 벌여 호텔측의 비난을 들었다는 말도 있다. 이 일을 두고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은 “변기 한 번 바꾸는 비용이면 아이들 학교의 푸세식 변소 10개를 개선할 수 있다.”고 턱없는 낭비를 개탄했다.
아직도 많은 학교가 좌변기 시설을 하지 못해 악취 나는 화장실을 쓰고 있다는 걸 ‘직무정지’님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화장실만 깨끗한 것을 좋아하면 뭐하나? 주변에서 푸세식 변소보다 더 심한 악취가 진동하지 않는가?
이럴 때, 고함 한 번 치자. “뚫어!” “변소 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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