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칼럼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푸르고운 2017. 1. 31. 00:24

창가에 서서 지는 해를 보았다. 이제 몇 번만 더 해가 지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2016년이 간다. 사회정의가 모래에 물이 스며 사라지듯 찾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고, 권력과 돈의 힘이 모든 것을 재단하는 척도가 되어 시민들의 가슴을 시리게 했던 한 해가 간다.

적게 시작한 촛불이 230만으로 불어나 불의와 법을 넘어선 잘못들을 쓸어낼 듯 덮쳤다. 무서운 군중의 힘, 나라의 주인이 나선 광장의 힘은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을 터닝 포인트로 삼아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의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돈과 권력의 유착, 유체이탈의 화법, 권력의 오래 된 공작 수법이 곳곳에서 드러난 치사한 정권의 행태에 역겨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의혹과 부끄러운 정권의 치부가 드러나 뉴스 듣기가 거북하고 화가 치솟던 가운데서 한 가닥 희망을 보았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거짓을 가르치지 않을 스승이 있음에 조금은 안도했다.

지난번 이화여대 청문회가 진행되던 날, 이대에 전경 1,600명이 진입했던 동영상이 나오자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했던 증인이 있었다. 이화여대 교수협회 공동회장인 김혜숙(62) 철학과 교수였다. 그 김 교수가 12월 26일 교수신문에 기고한 글이 있었다. 김 교수는 교수들이 권력과 돈과 결탁하고 학자의 양심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현실을 개탄했다.

김 교수는 최순실 딸 정유라와 관련한 사건의 흐름에 대하여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 안에서, 특히 대학 안에서 얼마나 가벼운 것이 됐는가를 경험하면서 또 한 번 충격을 경험했다.”라고 썼다. 신성한 학문의 마당인 대학에서조차 ‘도덕’이나 ‘도의’가 하찮은 것으로 인식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전 고려대 김준엽 전 총장 같은 분은 정권 반대 운동을 벌인 학생들을 제적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사정권으로부터 1985년 강제 사임을 당해 학생들이 퇴진반대 운동을 했었는데, 이런 일은 이제 30년이 지난 한국사회에서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됐다.

‘도덕’이 한갓 겉치장으로도 힘을 잃어가는 사회, 사람들이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공직에서 물러나는 일이 희소해지는 사회, 증거를 내밀어도 법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면 부인하는 사회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며, 교수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특히 인문, 사회 교수들은 가치와 당위의 문제, 삶의 목적과 방법과 방향에 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인가?

당위보다는 방편을 묻고,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묻는 영민한 인간들이 많아지는 사회 안에서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은 그 의미와 활력을 잃고 말았다.”라고 적었다.

교수들이 대학에서 학문을 하기 보다는 정치가의 싱크탱크로 일하기를 즐겨하고 권력의 중심을 향해 기를 쓰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교수가 세상과 가까워지기 위하여 애를 쓰고 그것을 기반으로 연구비를 펑펑타내서 쓰다보면 권력과 금력에 맛을 들이게 된다.

그렇게 권력에 맛을 들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안종범, 문체부 차관 김종 등은 정치권 인사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중이 고기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물론 아직도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데 주력하는 교수들이 대부분이고, 정치교수들이 많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권에서 불러도 손사래를 치며 학문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교수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대학 교수들을 유혹하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연구프로젝트가 존재하고 고위공직에 나갈 기회가 상존하는 한 권력과 금력을 지향하는 교수의 수는 줄지 않을 것이다. 가난한 소크라테스는 이미 지나간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김 교수는 “‘돈의 부역자’ ‘권력의 부역자’가 된 교수들을 보면서 피폐해지고 쪼그라진 우리 직업의 모습을 본다. 교수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고 묻고 교수의 역할을 정의했다. “교수들이 상대한 사람들은 아직 세상의 때가 덜 묻은 학생들이며 그들이 투자한 많은 시간은 도서관,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소비됐고 그 시간이 그들을 만들었다.

그들은 결코 상인이 될 수 없고 정치꾼이 될 수 없고 거간꾼이 될 수 없다. 교수는 학생들을 마주하고 그들에게 인간과 사회에 중요한 것, 바람직한 것, 사실인 것, 진실인 것, 진리인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아주 단순한 의미에서 그런 것들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남을 가르친다는 일의 위중함과 무게 때문에 위선자가 될 위험에도 항상 크게 노출돼있는 사람들이다.”라고. 김 교수와 더 많은 김 교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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