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더니 날씨가 매서워졌다. 자연의 법칙이란 어김이 없어서 설 추위로 다시 사람들을 긴장시키는 절차를 거르지 못한다. 설 추위를 거쳐 정월 대보름에 다시 반짝 추위를 보이면 영등바람이 봄을 데리고 올 것이다. 별로 추운 겨울이 아니었는데 올해는 더욱 봄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고 재촉하는 마음이다,
봄은 희망이다. 죽은 듯 보이지 않던 새싹들과 마른 가지에서 새순이 올라오는 소생의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올 봄에는 깨어나는 새 생명과 함께 죽은 듯 널브러져 있던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비로소 깨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 더욱 조바심을 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 민주주의는 권력집단의 작위적 변화가 아닌 순수한 국민의 힘이 밀어올린 새싹이기에 가슴 뛰는 기대를 한다. 그동안 몇 번이나 민주주의가 깨어날 기미를 보였지만, 국민의 의식이 민주주의를 수용할 자세를 갖추지 못하여 실패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도한 정권을 민심의 촛불로 불사르며 드러낸 성숙하고 단단한 국민의식이 배경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면서 안심과 기대가 곁들여져 더욱 봄을 기다리게 되었다. 탄핵소추 이후 갈수록 정권친위세력의 장난이 심해지고 있지만, 이제는 어떤 감언이설도 국민의 단단한 의지를 흔들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 20일 드디어 법률미꾸라지라던 기춘 대원군이 구속됐다. 그는 박정희 독재시절 신직수와 함께 ‘유신헌법’을 만들었고, 1987년 법무부 연수원장 시절에 최태민 일가를 도와준 인연으로 최씨 일가와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1975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시절에 소위 ‘학원침투 북괴간첩단’사건을 조작하여 죄 없는 사람들을 희생시켜 출세의 발판을 삼기도 했다.
1989년에는 검찰총장이 되어 삼양라면이 라면을 만드는데 공업용소기름을 사용하였다고 문제를 삼아 삼양라면이 치명타를 입게 하여 롯데라면이 라면 시장을 장악하게 하였다. 이 사건은 8년 후에야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로 드러났지만, 삼양사는 빼앗긴 시장을 되돌리지 못했다. 그후 2008년에 김기춘은 롯데의 법률고문으로 취임했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를 도와 청와대 비서실의 왕실장으로 재직하였다. 비서실장을 그만두고는 다시 롯데의 법률고문으로 돌아갔다.
1992년 대선에서 이른바 ‘부산초원복집사건’의 주역으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김영삼의 당선을 도왔다. 2004년에는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주도하였으며 끝까지 노 대통령을 비난하고 대립각을 세웠다. 이번 정권에서 비서실장 재직시에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특검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하여 20일에 조윤선과 함께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국정조사에서 한결같이 ‘모릅니다.’‘기억나지 않습니다.’로 일관하던 그에게 ‘법률미꾸라지’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다. 요리조리 책임을 회피하고 대통령에게 슬그머니 미루어버리는 솜씨를 두고 한 말이다. 어쩌면 문화계블랙리스트와 반 정권인사 지원배제 등 군부독재의 잔재가 이번 정권에서 되살아나게 된 근본 원인이 된 사람이 바로 그가 아닌가 싶다.
그가 구속되어 특검의 조사를 통해 어떤 사실이 더 밝혀질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가 사법적인 조치를 받음으로서 지난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걷히고 이 땅에 공작정치의 망령이 영원히 뿌리 뽑힌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물론 아직도 그를 닮은 정치검사 출신의 인물들이 있지만, 그 우듬지가 잘리고 나면 다시 국민을 능멸하는 겁 없는 짓은 나오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이다.
나이도 많고 건강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은 데다 법을 잘 아는 사람인지라 머지않아 건강을 구실로 구치소를 벗어나는 재주를 부릴 것이라는 짐작을 한다. 나중에 병보석이 되는 일이 있어도 일단 그의 서슬이 시들해져서 더는 나라에 해를 끼치는 일은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박근혜 정권이 탄핵으로 물러나고 그 들때밑(세력 있는 집안의 고약한 하인을 이르는 우리말)도 사법 처리되고 나면 국민이 바라는 새 시대가 활짝 열리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너무 오래 기다렸다. 이번에는 달라지겠지 하던 기대가 번번이 무너진 건 국민이 너무 정이 많았기 때문이고, 마음이 여렸기 때문이었다.
봄이 저만치에서 우릴 부른다. 촛불을 들던 그 마음 그대로 활활 타는 가슴으로, 새봄을 열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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