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칼럼

월요일 아침에

푸르고운 2017. 1. 31. 00:28

새해 새아침이다. 어제 보던 그 해가 오늘도 다시 떠올랐건만 오늘 보는 해는 여태 보던 해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해가 바뀌어 맞는 새아침이라는 의미를 넘어 “올해는 정말 다른 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겹쳐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없이 맞이한 새해아침의 기대와 해를 보낸 세밑의 느낌은 언제나 “올해도 별 수 없었다.”로 끝맺음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7년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고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는 까닭은 왜 일까?

작년 가을에 시작된 촛불, 나라의 주인들이 직접 흐트러진 나라를 정돈하고 바로 세우려한 민심의 혁명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기 바빠서’, ‘내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라며 무관심하던 국민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주인의식으로 촛불을 들었다. 각 연령층이 모두 광장에 나왔지만, 중심세대인 4~50대가 주축이 되었고 특히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정치에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희망의 징후가 되었다.

젊은이들의 정치에 대한 의식이 변화하면서 평화시위가 가능해졌다. 폭력시위가 민심 분출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이 현장에서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다. 따라서 시위에 대응하는 젊은 의경들도 국민의 마음으로 충돌을 피하려는 노력을 같이 했기 때문에 1,000만명이 시위에 참가하는 동안 단 한 사람도 연행되거나 부상하지 않았다.

매주 계속된 촛불시위를 통하여 젊은이들의 무딘 정치적 감각이 별러져 날카롭게 무장되었다. 그들은 이제 부정한 사람들의 말을 반박할 식견을 갖게 되었고 거짓과 참을 바르게 개려내는 능력도 갖추었다. 아울러 선거를 외면해 온 잘못이 오늘의 정치판을 만들었음을 자각하고 앞으로는 다가올 시대의 주인으로 역할을 인식하게 되었다.

촛불민심이 또 하나 기여한 점은 지금껏 선거판을 주도하고 표를 몰아주어 부패정권을 세워주었던 노년들의 생각도 바꾸어 놓았다. 이제까지의 ‘불쌍해서’ ‘누구하고 잘 알아서’ ‘우리지역이니까’ 따위의 투표가 정치판을 버려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부끄러워하고 분노하기도 했다. 정에 약하고 남의 말에 쉽게 넘어가는 약점을 가진 연령층이어서 변화한 생각이 유지될 지는 의문이지만, 큰 변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2017년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이 인용되어 어쩌면 상반기 중에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것이다. 그 선거는 과거의 선거와 달라야 한다. 권모와 술수로 상대방을 쓰러뜨리거나 댓글 따위로 여론을 호도하는 수법이 통하지 않는 바른 선거가 되어야 한다.

정권교체가 아닌 시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선거, 국민을 다스리려는 자가 아닌 국민을 위해 몸을 바치려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 대통령이 나라의 어른 노릇을 하던 지난 시대의 영광을 생각하거나, 정부와 각급 기관장을 논공행상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인물을 가려낼 수 있는 멋진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

지난 정권의 호위무사들이 여론을 피해 ‘개혁’이라는 모자를 쓰고 만든 정당이 영입한 어떤 후보에게도 표를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여태 파렴치한 정권을 비호하며 터무니없는 정책에 동조를 해오다가 촛불이 뜨겁게 타오르자 갑자기 변신을 선택한 위험한 사람들이 아닌가? 엄청난 촛불의 힘이 없었으면 탄핵도 없었고 그들은 여전히 호위무사의 역할에 충실하고 만족했을 것이다.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지난 두 번의 대선이 이 나라를 얼마나 피폐하게 했으며, 우리를 얼마나 부끄럽게 했던가를……. 그 두 번의 선거에서 호위무사들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젊은이들이 ‘헬조선’에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지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어떻게든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여 호위무사들끼리 ‘우리가 남이가?’를 건배사로 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거 때에만 국민 앞에 넙죽 엎드려 절하며 입 안엣 것이라도 내줄 듯이 발라맞추다가 선거가 끝나면 ‘선거 때에 무슨 말을 못 하냐?’라던 사람들이 다시 권력을 잡게 해서는 안 된다. 흰 개꼬리는 절대 황모(黃毛)가 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천연스럽게 연기도 잘한다. 우리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어느 시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며 속았던 적이 있다. 그랬던 사람이 304명 어린 목숨이 선실에서 나오지 못한 채 가라않고 있는 시간에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했던 일을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어오던 민주주의, 열심히 일하면 일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본은 올해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 만들어진다. 고집불통의 권위자가 아닌, 재벌의 편이 아니라 서민의 편인, 그동안의 적폐를 쓸어내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사람을 뽑을 희망에 부풀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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